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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5건의 자화상 리스트
나는 새, 화가 하상용 나는 새, 화가 하상용
나는 새, 화가 하상용   글_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매일 술에 젖었던 애주가, 깡마른 체구에 거친 턱수염, 날카로운 눈매, 취기를 이용해 거침없이 내 쏘는 ‘입바른 소리’, 한마디로 까칠한 이미지가 故 하상용 선생의 캐릭터로 보인다. 생전에 반골(?) 기질이 강해서 시류에 영합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작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을 끝없이 견지했다. 그 결이 고운 순수한 열정과 까칠함 속에 감추어진 따뜻한 온기가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운룡 시인의 삶과 문학 이운룡 시인의 삶과 문학
이운룡 시인의 삶과 문학   이재숙(시인 ‧ 열린시창작교실 지도교수)   ▶ 구름 위의 용이 되기까지초아草芽는 풀의 씨앗이나 줄기에서 새로 나오는 어린 싹을 말한다. 운룡雲龍은 한자로 해석하면 ‘구름’ 위의 ‘용’을 뜻한다. 이운룡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시인의 꿈을 이루기까지 험난한 길을 초월적인 힘으로 극복했다. 이운룡 시인의 아호는 중산中山이다. 중中이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본래의 뜻은 ‘가운데‘이다. 그런데 주역에서 중中은 ‘주변과 더불어 그 속에서 중심이 되자’라는 ‘공동체의 中’이다. 그러므...
황야의 등불, 화가 엄택수 황야의 등불, 화가 엄택수
황야의 등불, 화가 엄택수   글_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까까머리 중학생, 익산 남성중학교에 다니면서 동네서점에서 수시로 책을 빌려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던 문학소년. 작은 체구였지만 또래보다 성숙한 사유를 즐겼다. 명문고 남성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부 활동을 시작했고, 명태를 아주 잘 그렸다. 명태를 잘 그려서 생긴 건지, 깡마른 체구 때문인지 그의 별명이 ‘명태’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보기 드물게 유화를 그려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조숙한 열정을 내보이기도 했...
명창 조소녀 명창 조소녀
<백인의 자화상> 명창 조소녀   글_ 김회경   두 달여 동안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해사했다. 검정색 벨벳 원피스를 말끔히 차려입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저렇듯 단정하게 앉아있는 사람. 78세의 고령에도 그는 여전히 ‘인물치레’ 좋은, 우리의 영원한 소녀, 조소녀 명창이다. 2014년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淸 Alive>에서 일곱 살 어린 제자의 손을 잡고 무대에 섰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오래전부터 후학들을 키워내는데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와서일...
시와 죽음을 거래하다. 시인 박정만 시와 죽음을 거래하다. 시인 박정만
시와 죽음을 거래하다, 시인 박정만 장창영(전북대) ▶ 광활한 우주와 사라지지 않을 박정만의 시 “나는 사라진다/광활한 우주 속으로”(<終詩>)를 외쳤던 시인 박정만,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시와 치열한 삶의 흔적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시인 박정만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사실은 그가 20여 일에 불과한 시간 동안, 300여 편의 시를 썼다는 점이다. 1987년 8월 19일부터 20여 일간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쏟아냈던 수백 편의 시들은 마흔셋, 짧은 생애가 빚어낸...
절대 고독의 자유인, 전주에 귀의한 시인 박봉우 절대 고독의 자유인, 전주에 귀의한 시인 박봉우
절대 고독의 자유인, 전주에 귀의歸依한 시인 박봉우 문신(시인, 문학평론가)▲ 고독한 실존주의자 박봉우박봉우는 1934년 전남 순천군 외서면 금성리 679번지에서 전남 승주군 군수를 지낸 아버지 박병모와 어머니 김효정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했다.① 23살이 되던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42살 되던 1975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전주에 정착, 1990년 3월 1일 57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전주에서 살았고, 전주시립효자공원묘...
박종수, '자유' 그 간절한 메시지를 담다 박종수, '자유' 그 간절한 메시지를 담다
박종수, ‘자유’ 그 간절한 메시지를 담다 글_ 김미진(전북도민일보 문화교육부 차장) 붉은 황토 흙으로 다져진 낮은 구릉 위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던 소년의 모습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각종 공모전에 떨리는 마음으로 작품을 출품하며 청춘을 불태웠던 청년도의 모습도 사진첩에서 사라져 버렸다. 미술시간을 헐렁하게 보낼라 치면 이내 불호령을 내렸던 스승의 그림자도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이 남아 있다. 그림만 그리는 한 남자, 박종수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자신의 삶에 있어 ‘그...
자기 구원과 시대를 증언하는 시, 허소라 자기 구원과 시대를 증언하는 시, 허소라
허소라 시인 - 자기 구원과 시대를 증언하는 시 이준호 (소설가·동화작가) 시인 허소라(許素羅, 본명 衡錫, 1936- )는 전북 문단의 산 증인이다. 1936년 3월 12일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군 복무 외엔 전북을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로, 한국전쟁이 발발해 피란 간 곳도 고향인 진안이었다. 시인은 금산동중학교와 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주 신흥고등학교에서 약 8년간의 교사생활을 거쳐 1969년부터는 군산수산전문대...
선비의 기개를 잊지 않은 시인, 최형 선비의 기개를 잊지 않은 시인, 최형
최형은 1928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으며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전주농고·전주고·옥구종합고·군산고 등 전북과 전남 지역 고등학교에서 30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다가 1984년 자원 명예퇴직을 했다. 이후 시·소설·산문을 집필하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전북문학인협의회·전북작가회의·카톨릭문우회·전북민예총 등 문화예술단체와 참여자치시민연대·통일연대·환경민주연합·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최형은 집회 현장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깨어있는 시인으로 불렸다. 시에서는 현실과 역사를 향해 비판...
명고수 주봉신 명고수 주봉신
명고수 주봉신 기록자 : 김회경 ‘우리는 어떤 이를 예술인이라고 부를까.’ 한 가지 물음을 안고 명고수 주봉신을 만나러 가는 길. 정오가 가까워진 시각에도 해가 보이지 않는 을씨년스런 초겨울 어느날이었다. 전주에서 삼례나 익산으로 빠져나가는 길의 초입부라 할, 전주시 동산동의 어느 오래된 아파트 상가에서였다. 낡고 비좁은 상가 맨 끝 쪽에 자리한 세 평 남짓한 작은 쪽방이 그의 전수관이자 작업실이다. 둘째 아들이 팔순 중반에 들어선 늙은 아버지를 부축해 자리에 앉혀드렸다. 약속한 시간보...
가장 한국적인 미술표현의 대가 그리고 교육자, 이창규 가장 한국적인 미술표현의 대가 그리고 교육자, 이창규
이창규, 가장 한국적인 미술 표현의 대가 그리고 교육자 글_ 김미진(전북도민일보 문화교육부 차장)예향 전북을 일으킨 미술 명문대로 통하는 원광대학교. 지난 1970년대 미술교육과로 출발한 이곳 대학에서 배출된 학생들은 현재 전북지역의 중견, 원로 작가의 자리에 위치하면서 지역 미술계를 보듬고 있다. 그 중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이창규 원광대 미술대학 명예교수다. 지난 1980년부터 2009년 원광대를 정년퇴임할 때까지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는 지역 화단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제자가 많...
파란 고색창연의 음악신사, 이광한 파란 고색창연의 음악신사, 이광한
전주 백인의 자화상 - 7,80년대 대중음악 7,80년대 시대와 풍류의 음객(音客) 파란 & 고색창연의 음악 신사, 이광한 70년대 산업화의 숨가쁜 일상에 던져진 육체는 고되고 힘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고통을 씻어주고 지친 몸을 풀어주는 역할이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80년대 멍들고 상처 입은 마음은 현실의 장벽 앞에 무너지던 날이 많았습니다. 음악은 암울한 시대, 정치·사회·문화의 허기를 다 채우진 못했습니다. 본질은 음악이 아니라, 시대를 억압하던 사회악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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