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문화재단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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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 2020-05-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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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完順 완순/woan sun, youk(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2019.1113일 수요일 홍대 와우산 근처에 자리 잡은 육완순 선생의 작업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분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쌓여있는 그분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오랜 시간 변함없이 입고 있는 검정 긴 원피스, 어깨에 살포시 걸친 숄, 소녀처럼 자그마한 체구, 절제되어있지만 기품 있는 말투와 단아한 자태, 인터뷰 내내 무용 인생을 말하며 행복해하는 소녀 같은 미소를 바라보며 특별한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순진함과 순수함이 겹쳐 보이는 모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본인의 주관으로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지켜나가고 있는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大母) 육완순 선생만의 정신이 모습 속에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느꼈다.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바다를 간직하면서 때로는 천둥을 동반하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보이는 풍경으로, 때로는 수초의 촉촉함으로 삶의 터 근처에선 예술적 세계를 향한 순수한 열망이 다음 세상 그다음 생애에서도 펼쳐내고 싶다는 눈빛으로 가득했다.

 

강명선(무용평론가)

 

 

누구나 오염되지 않고 빛나며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이 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시간은 사람의 일생을 지배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경험들을 간직하기 마련이고 그 경험들은 생의 소중한 순간마다 되살아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그 사람의 삶의 양상을 좌우한다.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대모(大母)인 육완순이 이 땅의 무용가로 자리 잡은 계기이자 그 찰나의 순간은 아주 어렸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춤을 만났던 자리, 그 운명의 순간은 다섯 살 때로 기억된다고 한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행사 때 처음 춤을 접했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파노라마 같은 내면의 향기로운 감각의 충격이 무용과 첫 만남이자 바로 첫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친한 친구 세 사람이 자주 만나서 교회에서 놀았었는데, 하루는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고사리 같은 동심들이 모여서 서로 장래의 꿈을 얘기했다. 저마다 동심 속에 상상의 나래를 달았다. 친구인 () 복순이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고, () 덕순이는 무용가가 되겠다고 했다. 이란 자유롭고 무한한 상상이라는 공간에 놓여 있어 참으로 거침이 없었다. 비록 어렸었지만, 가슴을 찡하게 하는 어떤 꿈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육완순 꿈은 세계 제일의 무용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꼭 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덕순은 무용가의 꿈을 포기하고 지금은 다복한 가정주부가 되었지만, ()복순은 그때의 맹세를 실천하여 그 후 요셉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개업하였다.

 

순진무구한 세 소녀가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움을 나누어주었던 그 시절의 순간들을 통하여 육완순 인생의 지평에 펼쳐질 광활한 생명의 환청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예술로서의 무용을 가슴속 깊은 곳으로 자각하는 바람 소리였으며 허무맹랑한 꿈이 현실의 소망으로 바뀌는 자기 확신의 다짐 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육완순은 남들과 다르게 유별난 데가 많은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사고가 성숙하지 못했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옳다는 확신이 서면 누구에게도 굽힐지 모르는 성품이었다. 고집불통이었지만 남다른 감성이 가득해 작은 바람 소리 하나에도 서정시처럼 언어 이전의 형상과 시어(詩語)를 갖고 있었고 알아주는 울보였다. 밀린 숙제를 내팽개치고 끄적끄적 써 내려간 한 구절에 부르르 작은 몸을 떨며 전율했던 기억이 무수했다. 그것은 몸이 춤꾼으로서의 자유를 획득하기 이전의 충격이었고 그것이 시의 이름으로 풀어쓴 춤의 의미였음을 안 것은 춤을 제대로 알고 난 훨씬 후의 일이었다. 무용가 육완순의 존재가 어린 시절의 순간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오염되지 않고 빛나며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이 있다. 그러나 그 소중한 광채를 얼마나 영원히 빛으로 물들이고 끌어들이느냐는 본인 자신의 노력과 때로는 운명에 달렸을 뿐이다.

 

 

저마다의 인생이 동터 오르기 시작하는 젊은 날, 고통의 축제가 없었다면 인생은 황량함만으로 가득 찰 것이다.

 

고통이 없는 삶, 아픔이 없는 사랑의 의미, 실패가 없었던 성공의 진정한 가치와 고통이야말로 찬연한 삶의 윤기를 내는 빛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다. 소리와 빛이 다가왔던 초··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통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음악 감상은 물론 시와 소설을 닥치는 대로 탐닉했던 문학소녀이기도 했다. 막연하게나마 당시 무용부에서 배우는 춤이 기교일 뿐 사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항상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내면의 소리가 끌어올려지는 춤에 대한 생각들로 늘 목말라했다. 영혼을 뒤흔드는 춤을 배우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배움의 터전이 없었기에 기어코 대학에 가서 춤을 배우겠다고 결심을 했다.

 

여고 시절, 한국전쟁으로 온 국토가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는 중에도 이화여대의 임시교사가 있었던 부산을 향해 떠났다.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리고 전쟁 중이었지만 춤을 향한 열망은 그만큼 강렬했다.

 

 

배움에 목말라 있었던 그녀에게 유학은 마르지 않는 거대한 강줄기와 같았다.

 

어렵게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지만, 전쟁으로 가세(家勢)는 많이 기울어서 입학 첫 학기의 등록금을 제외하고 줄곧 장학금을 받아 졸업했다. 대학 시절은 오로지 무용 하나였지만 춤추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도 행복했던 대학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했다. 1956년 육완순은 이화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이대 부속 중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첫 사회생활은 열정 하나로 지핀 불꽃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열악했다. 그곳에서 멈출 수 없어 유학을 준비했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의 자유로운 춤을 배우고 싶었고 더 큰 꿈을 향한 에너지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단히 유학 준비를 하면서도 학교생활에 열중했다. 새벽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학원 영어 문법반에 다니며 학교에 출근해 하루 종일 운동장 수업을 했다.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습관을 가졌고 그 시절의 습관이 오늘날까지 몸에 밴 것이다. 새로운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호세 리몽(Jose Limon)을 운명적으로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

 

미국의 현대무용은 신세계였다. 아니 미국 그 자체가 신세계였다. 배움에 목말라 있었던 그녀에게 유학은 마르지 않는 거대한 강줄기와도 같았다. 생명과도 같은 무용을 허겁지겁 삼키며 하루속히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에 한국 현대무용의 씨앗을 뿌리고 싶었다.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과 운명적 만남

 

사람의 생을 결정짓는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훌륭한 스승과 만남은 바로 정신과의 만남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무용은 잘 차려진 잔칫상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모양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박제된 예술>만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정신이 텅 빈 정형화된 춤의 모습에 식상할 때 생명의 기운으로 꽉 찬 마사 그레이엄의 예술세계에 탐닉하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작품의 주제와 성격은 이상형보다 고뇌형이었고 그래서 수업 때마다 강조한 것이 마음의 태도였다. 마음의 자세가 바르지 못하고 깊지 못할 때 진정한 의미의 무용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의 출발점이 주고받는 인사였기 때문이다.

 

마사 그레이엄 선생은 결코 권위로 치장한 스승은 아니었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는 엄했지만, 항상 따스한 자비와 온화한 자애로움이 흘러넘쳤다.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선생을 보며 언젠가는 선생님처럼 되리라는 희망에 대한 밀교와도 같은 자신과의 약속이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마사 그레이엄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었다. 때로는 격렬한 비판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전설적으로 닦은 분이었다. 단지 무용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노력은 곧 삶이라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표본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척박한 이 땅에 현대무용의 씨앗을 심고 가꾸며 각고의 시련을 견뎌온 영원한 지표이다. 진정으로 선생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육완순 나의 춤 반세기)

 

 

미국 현대무용 도입과 씨 뿌리기(1963~) 귀국공연

 

공연명 : 1회 현대무용 육완순 발표회

일 시 : 1963925~264, 7

장소 : 국립극장(명동)

출연 : 오케시스(Orchesis - 대학생현대무용단)

남자 - 강정복(경희대) 김광수(경희대)

김영명(경희대) 노상석(경희대)

여자 - 김진수(경희대) 구 정(서울사대)

김연자(서울사대) 김초자(경희대)

김영자(경희대) 김해숙(경희대)

엄옥자(경희대) 이경자(이화여대)

김월정(이화여대) 유미라(경희대)

김정자(서울사대) 한명자(이화여대)

김정혜(경희대)

 

 

꿈의 공동체..

한국 컨템포러리 무용단 창단(1975~2015; 예술감독

1975년 한국 최초의 현대무용 단체인 ?한국 컨템포러리 무용단?을 창단했으며, 그 결과 오늘과 같이 한국 무용계 전반에 걸쳐 창작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무용단으로 성장했으며 한국 현대무용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작품 한 두레공연)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작품 물마루공연)에 참여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991년 러시아 레닌그라드 국립발레단의 보리스 에이프만의 초청으로 한국 현대무용 최초의 역사적인 합동 공연을 가진바 있다. 또한 1993년 한중수교 이후 북경과 상해 공연을 통해 양국 간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하였으며, 2007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개최된 탄츠좀머 페스티벌(Tanzsommer Festival)에 초청되어 세계 무용인들로부터 탁월한 예술적 기량을 인정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창단멤버 : 프로그램 순서

김옥규 안무 출연 - 시편 130

김화숙 안무 출연 - She was a visitor

박명숙 출연 - I don't know how to love him

김복희 안무 출연 - 춘향이야기 중에

박인숙 안무 출연 - 태양병

이청자 안무 출연 - 탈을 쓰고 울었습니다.

양정수 안무 출연 - 불협화

이정희 안무 출연 - 꼭두인간

 

 

한국현대무용협회 창립(1980, 초대회장) ‘꿈을 타고 오르다

 

새로운 꿈이 자랐다. 1980년에는 ?한국현대무용협회?를 창립하여 현대무용교수들과 현대 무용인들의 활동무대를 넓혀 주었으며, 한국 현대무용의 위상을 높여 놓았다. 그리고 이 협회는 한국의 현대무용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많은 일을 시도했다. 특히 1982년부터 본 협회에서 주최한 ?국제현대무용향연?은 일천한 우리 창작무용계에 커다란 활력을 제공하였으며 우리 춤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 하며 오늘날 국제현대무용제(MODAFE, Modern Dance festival)로 성장하는 결실을 맺었다.

 

 

꿈에 세계적인 날개를 달다.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창립(1985)

 

육완순의 꿈은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는 것이었다. 국제무대를 누비며 한국의 우수한 무용을 아낌없이 세계무대에 알리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현실은 개인적으로 국제무용 교류를 추진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리하여 국제무대로 뻗어나가고 싶은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법인단체로 현재까지 성장 발전하고 있다. 1985?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를 문화체육부 등록단체로 발족시켜 현대무용 안무활동을 비롯한 현대무용의 국제교류 및 우수 안무가의 해외 진출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KDF(Korea Dance Festival) -무용교육의 요람-

1990년부터 현대무용의 세계적인 대제전인 미국의 ADF(American Dance Festival)를 서울에 유치하여 다양한 워크숍과 공연을 통해 현대무용계의 실질적인 발전을 기했으며, 지금은 그동안의 개최 경험을 통해 독자적인 KDF 행사로 발전시켰다.

 

SCF(Seoul International Choreography Festival)

서울 국제안무페스티벌 ‘21세기를 향한 꿈은 모든 열정이 응집된 육완순의 마지막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수 안무가 발굴, 양질의 공연,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는 무용 종합 축제가 바로SCF(Seoul International Choreography Festival)이다. 이제 제2의 육완순이 아니라 제3, 4의 육완순의 출현을 보면서 80년간의 꿈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있다는 기쁨과 함께 SCF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특히 육완순이 50년의 무용을 통해 국제적으로 맺어 온 네트워크와 세계적 지명도는 SCF의 권위를 인정받을 만하며, 젊은 안무가들이 서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가 되고 있다. 앞으로 SCF는 해외 페스티벌 네트워크를 확대 재편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가운데 세계 무용시장을 선도하는 페스티벌로 발전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지금까지(2019년 현재) SCF를 통해 해외로 진출한 안무가는 13개국 23개 페스티벌에 연인원 169명에 달하며,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페스티벌로써 젊은 안무가들이 서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가 되고 있다.

 

 

[예술가는 결코 세상과 유리된 존재가 아님을 아놀드 하우저를 통해 스스로 실행하고 실험하다]

 

왕성한 공연예술 활동

 

190여 편의 안무작품 가운데 논개(63), 부활(65), 초혼(65), 황무지(69), 단군기원(71), Jesus Christ Superstar(73), 독백(75), 살풀이(79), 전설(81), 한 두레(86), 실크로드(87), 물마루(88), Ⅱ」(93), 를 위한 시(00), 아 학아(01), 그대(02), 실크로드Ⅱ」(05), 실크로드Ⅲ」(07), 아직도 최고의 날을 꿈꾼다.(13), 실크로드Ⅳ」(2015), 초혼Ⅲ」(18) 등은 육완순의 탁월한 예술 역량을 보여 주는 대표작들이다.

 

대표작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1973~) ‘하늘이 주신 꿈

하나님은 육완순에게 섬광과도 같은 지혜와 기회를 주었다. 현대무용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최상의 작품을 안무할 기회였던 것이다. 불과 한 달 만에 안무한 작품(1시간 30)이라는 것이 지금도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신앙으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본격적으로 현대무용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현대무용에 관한 관심이 일반 관중에게 폭발적으로 보급된 사건이 되었다.(현재까지 46년간, 국내·310여 회 공연 중) 특히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초연된 무용극 슈퍼스타 지저스 크라이스트46년간 국내외에서 310여 회라는 한국 최장·최다 공연을 기록하고 있는 불후의 대작으로 한국 무용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작품으로 춤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성경의 이야기와 음악, 깨끗하고 정리된 춤과 구성, 풍성한 볼거리 등이 관객들을 꾸준히 모아온 요인이 되었지만, 작품 전면에 스며있는 깊은 영감과 고뇌는 고정 관객들이 작품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85여만 명의 관객을 창출하며 현대무용의 불모지와 같았던 이 땅에 현대무용을 정착시킨 영향력은 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성과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공연하더라도 관객 확보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대중적인 작품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슈퍼스타 46년 간의 공연에서 육완순이 가르치고 훈련해 무대에 세웠던 수많은 제자 역시 이 작품의 역사와 함께 한국의 현대무용 발전과 예배무용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 무용인들로 성장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배출된 제자들의 면면은 곧 한국의 현대무용 인물사이며, 계보라고 할 수 있다. 육완순이 이화여대 재직 시절에 배출한 제자는 하정애, 김옥규, 전명숙, 이정희, 김복희, 김화숙, 박명숙, 박인숙, 양정수, 김경옥, 김기인, 이혜경, 황문숙, 서영희, 신상미, 안신희, 조은미, 김양근, 김말복, 김소라, 권한순, 김미경, 성은지, 윤승옥, 이연숙, 전미숙, 안애순, 김현남, 반주은, 방희선, 황미숙, 김원, 조미애, 박혜란, 안은미, 이윤경, 이지현, 최혜정, 김희진A, 김양선, 김용경, 박은영, 이미경, 이연수, 김희진B, 장은정, 김정미, 나경아, 송인아, 김성희, 남영호, 윤미정, 이정은, 정혜정, 조은숙, 최병주, 홍미성, 이강순, 홍선미, 박소정, 국은미, 김정은, 윤정아, 정정아, 김혜숙, 장구보, 최혜경 등이 있으며, 그 외 남성무용가로는 강만홍, 박일규, 안정준, 홍승엽, 이병일, 최두혁, 서병구, 김광섭, 김성한, 류석훈, 박호빈, 박해준, 정운식, 박진수, 이광석, 이석우, 예효승, 이해준, 이호연, 성진수, 안영준, 주재만, 신창호, 황영근, 김영재, 진병철, 이윤석, 서승리, 최진한, 정홍섭, 김재덕 등 기라성 같은 무용가들이 이 작품을 통해 꿈을 키워온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한국현대무용 50년 그 중심에는 육완순이 있었다.

 

1963년 이후 한국의 현대무용 50년은 에서 를 창조하는 역사였으며, 한국의 현대무용이 세계화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인고의 기간이었다. 그 중심에 육완순이 있었다. 육완순의 무용은 이미 개인의 삶을 떠나 대한민국의 문화자산이 되었고, 한국의 현대무용을 바라보는 세계의 창이 되고 있다.

 

 

저술 활동

 

대표적인 저서는 현대무용(이화여대 출판부, 1979), 현대무용실기(이화여대 출판부, 1981), 무용즉흥(신흥출판사, 1983), 안무(이화여대 출판부, 1984), 서양무용 인물사(도서출판 금광, 1986), 무용교육과정(공저, 도서출판 금광, 1992), 陸完順-나의 춤 半世紀(도서출판 마루, 2003), 무용교육과정 개정판(공저, 스포츠북스, 2010) 등이 있으며, 역서에는 프랑소와 델사르트의 예술세계(교육과학사, 1979), 무용연극요법(공역, 교육과학사, 1980), 무용인들을 위한 해부학(공역, 고문사, 1981), 마타 그라함(도서출판 금광, 1984), 무용예술(도서출판 금광, 1985), 노베르의 편지(도서출판 금광, 1987), 이사도라와 에세닌(공역, 도서출판 금광, 1988), 에포트(도서출판 금광, 1989), 다이어트(도서출판 금광, 1999) 등이 있다.

 

 

세계현대무용 사전에서 육완순의 공적

 

1998년 미국 게일 리서치(Gale Research)가 발간한 세계현대무용사전(IDMD, The International Dictionary of Modern Dance)에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의 한사람으로 등재되었다.

 

무용평론가 김영태는 세계현대무용사전에서 육완순의 공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육완순은 최초로 한국 현대무용계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씨를 뿌렸으며, 그 씨앗이 결실을 거둔 것은 그의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大母)다운 춤 인생의 장인정신을 대변한다. 육완순은 일천한 한국현대 무용사의 원년을 장식했고, 춤의 유산을 남긴 안무자, 지도자로, 특히 세계 춤 무대와의 교량을 구축한 한국현대무용 역사의 증언자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인 육완순은 현재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SCF 서울 국제 안무 페스티벌 예술감독, ()한국라인댄스협회 회장, 명성현대무용단 안무자, 육완순 무용원 대표 등을 겸하고 있다.

 

 

육완순 프로필

 

1933616일 전북 전주 출생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 졸업(이학사)

1961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이학석사)

1961~1963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수학

미국 마사 그레이엄, 호세 리몽, 앨빈 에일리 사사

1986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이학박사)

2014년 현대무용명예박사학위(HDMD) 미국코헨대학교 총장(명예박사)

1964~1991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1975~2015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예술감독

1980년 한국현대무용협회 창립회장

1985~현재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1990~현재 KOREA ADF/KDF(하계국제 현대무용 페스티벌) 한국회장

1992~현재 SCF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예술감독

1995~현재 육완순무용원 대표

2007~현재 사단법인 한국라인댄스협회 회장

국내공연 190여회

국외공연 22개국 45개 도시 66

단일작품 무용극(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 46년 공연 국내외 310여회

 

발레라는 클래식한 장르도 생소하던 때 현대무용을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온 주인공이며 한국 현대무용의 시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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