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의 대중화에 앞장선 무용가, 김화숙
- 한국 현대무용 정착과 사회적 위상 제고에 기여하다
윤대성 월간「댄스포럼」편집장
“이제야 무용 작품이 공연되는 ‘바로 그 순간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접는다.
영원은 순간이고 순간은 영원이라는 이 단호한 명제.”
- 김화숙, 2010
김화숙은 “영원은 순간이고 순간은 영원”이라는 역설을 전주에서 한 무대를 꾸미면서 깨달았다고 말한다. 춤은 음악의 악보, 연극의 희곡처럼 영구히 보전되는 것과는 속성이 다른 참으로 독특한 예술. 추어지는 즉시 사라지며, 그럼에도 순간을 영원처럼 불태우는 생명력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그날 김화숙의 깨달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전에, 춤에 대한 이끌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전주에서의 새로운 개안처럼 찰나를 살면서 영원을 희구하는 인생과 무던히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50년 넘게 서정적인 작품세계를 펼쳐 온 김화숙은,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 한참 전부터 우리 현대무용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특유의 문장력으로 문필가로서도 인정을 받아 월간 ‘춤’에 에세이를 연재하는 등 ‘글 쓰는 무용가’로 수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춤 지성화’와 사회적 위상 제고에 기여했다. 아울러, 무용의 저변 확대를 위한 무용교육혁신위원회를 결성해 무용의 대사회적 뿌리내리기 캠페인을 해왔다.
예술 인생의 전반부엔 서울, 후반부엔 전주와 익산을 비롯한 전라북도에 거점을 두어 온 그의 인생을 돌아본다. 무용가, 안무가 겸 교육자로서 춤에 인생을 바치면서, 무려 93편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1. 현대무용의 길에 들어서기까지(1949~1970)
김화숙은 1949년 12월 2일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나 유치원은 군산에서, 그리고 광주광역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쓰러지기 일쑤였던 그는 여수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아버지에게로 요양을 가야 할 만큼 체질이 허약하였다 한다. 초등학교 졸업을 두 달 남긴 시점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를 타지에서 보내야 했지만, 어린 시절 자연과의 교감과 함께 당시 보았던 여수 선창가에서의 서커스단 공연과 여성 국극단 공연은 이후 그의 창작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 광주로 돌아와 광주여자중학교 무용반 활동을 하였으나 전문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한 건 광주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다. 당시 광주여고에는 ‘광주 무용계 대모’로 불리다 사후 옥관문화훈장(2021)을 수훈한 고 엄영자가 있었다. 엄영자의 전공은 발레. 김화숙은 하교를 위해 강당을 지나가다 몸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즈를 입고 바 운동을 하는 선배들 모습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타이즈 차림의 발레는 충격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빨려 들어갔다는 그는, 이를 “운명적인 만남”으로 회고한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얼른 자리를 떠날 법도 한데, 나는 한없이 빨려 들어갔어요.
그 생소한 차림의 선배들의 몸짓에서 한참 눈을 뗄 수가 없는 겁니다.
그건 말하자면, 운명적인 순간이었어요.”
광주여고 무용반에 들어간 뒤 한 달은 매일 코피가 났다. 두 달째엔 이틀 걸러 한 번, 이후엔 일주일에 한 번, 1학년을 마칠 즈음엔 피를 보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김화숙은 이를 “훈련을 이겨내는 힘”이 생겼다고 표현한다.
엄영자가 요구하는 훈련의 강도는 “햇빛을 볼 수도 없는” 정도였다. 새벽같이 등교해서 밤 11시가 되기 전에는 집에 가는 경우가 드물었고, 소풍날은 반(半)공식적인 무용반 연습 때문에 학교에 머무는 것이 당연했다. 콩쿠르 때면 최소 두 달 합숙이 당연지사. 광주여고 무용반에서 3년의 연습량이 통상의 10년 치와 맞먹는다는 것은 대학에 가서야 깨달았다. 덕분에 고등학교 재학 동안 무용반은 이화여대 무용 콩쿠르에서 3년 종합우승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차곡차곡 쌓아온 현대무용단 사포의 성장은 20주년 무대에서 그 빛을 발했다. (중략) 무용수들의
발에 짓밟히는 국화로, 농민의 함성과 같은 북으로, 지식인의 정신적 상징인 대나무로, 삶의 무게
인 보따리로, 당시 백성들이 처한 현실을 소품으로 나타냈다.
(중략) 가야금으로 연주한 동요 ‘따오기’가 흐르고 강강술래를 도는 듯 여자 무용수들이 나섰다.
붉은 드레스의 치마폭을 이용한 ‘해 돋는 나라’는 아름다움으로 줄곧 힘 있는 무대를 펼쳐왔던 사포의 새로움이었다.”
- 도휘정, 2005.6.13.
다시 세월이 흘러, 30주년 기념 신작 ‘사포의 겨울 숲’(2016)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 오른다. 앞서 발표한 ‘뷰티풀 메모리즈’(Beautiful Memories, 2006)와 ‘지나가리라’(2008)에서 정서가 이어져 내리는 작품이다. 김화숙은 ‘겨울 숲’을 통해 사포만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무용단이라는 숲 안의 단원들. 오랜 기간 무용단 대표였던 신용숙을 잃은 슬픔을 견디어내며, 새로운 봄의 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강인한 정신을 곧 ‘겨울 숲’으로 본 것이다. 이 작품은 예산도, 여건도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30주년 기념으로 ‘사포의 시간 1985-2015’ 도서 발간과 함께 2016년에 ‘겨울 숲’을 선보이게 된다. 이 공연은 30
년간 전북을 지켜왔지만 지원금 없이 자력으로 치르는 무상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화숙은 포기하지 않고, 사포의 춤을 사랑하는 후원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자력으로 ‘사포의 겨울 숲’을 전주 무대에 올린다.
30주년 공연을 관람한 전 원광대 유럽문화학부 교수이자 시인 정옥상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4. 무용 교육자로서의 활동(1989~현재)
김화숙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 겸 안무가로서 미국 게일리서치의 ‘세계현대무용사전’(1998)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옥스퍼드무용사전’(2000)에 등재되었다. 그만큼 예술적 업적이 큰 인물이기도 하지만, 교육자로서 국내 무용계의 염원이었던 ‘무용교사자격증’의 산파 역할을 한 공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간단하게 덧붙이려 한다.
“한국무용교육학회를 창립하고 초등학교 무용 교과서를 발간해 낸 일은 큰 보람이지만,
더 나아가 예술교육으로서 무용 교과가 확립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김화숙은 교육자로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차례로 재직하며 국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체계 안에서의 무용 교육을 두루 경험했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는 무용과 교수라고 해도 예술가로서의 활동에 골몰하던 시기. 고등학교 무용 교사 세 사람을 포함하여 마음 맞는 여덟 명과 함께 ‘한국무용교육학회’를 1989년 만들고, 18년 동안 학회장을 맡아 무용교육학회지 발간 및 무용지도자 강습회와 학술심포지엄 개최를 주관했다.
무용은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 장르임에도 스포츠를 다루는 체육 교과목의 일부로 수록되어 있을 뿐 독립된 교과목이 아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그는 2002년 12월 심포지엄과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무용 교육혁신위원회’(구 무용교과독립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다. 공동위원장을 맡아 교육정책 세미나와 국회 공청회 등을 추진하여 무용 교육 행정제도 개선을 주도한 결과, 중등 교원자격증 표시과목에 ‘무용’이 들어가면서 2015년 무용교사자격증이 신설된다. 2015년 입학생부터 체육교사자격증이 아닌 무용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화숙은 예술강사지원사업(구 강사풀제)에 무용이 포함되는 데에 또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국악, 연극, 영화 세 분야가 운영되던 상황에서, 이 사업에 무용 분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문화부에 보내는 등 문제의식을 피력한 것이다. 그 결과 2005년부터 무용 분야도 예술강사지원사업을 시행하게 된다. 당시, 사업 진행은 무용교육혁신위원회에서, 교재 개발은 한국무용교육학회에서 담당했기에, 두 단체를 모두 설립한 김화숙은 교재 개발에 있어서도 책임연구원으로서 주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초, 중, 고등학교 무용교수-학습과정안’, 초등학교 학년별 교과서, ‘전국아동복지시설 무용교수-학습과정안’, ‘소년원학교 무용교수-학습과정안’ 등의 개발을 맡았다. 그는 2015년 2월까지 40년 이상을 대학에 재직하면서 안식년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무용 교재 개발과 ‘무용교사자격증’ 문제 해결에 쏟았다.
김화숙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초대 무용교육위원장(2005~2008)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한국무용교육원을 만들어 “정신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재창조하며, 감정을 정화하는 무용을 연구함과 동시에 교육적 실천을 제시”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13년간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아울러, 교육자 겸 무용학자로서 20여 권의 저서와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 심정민(2019.12.), 서울무용제 40주년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무용가들. <춤>, 44(12), 126-130.
참고문헌
Festival International Cervantino(2012). 40 años, 1972.~2012.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cuatro décadas de celebrar el arte. México, 55.
김경옥(1979). 意識의 美學 - 金福喜·金和淑의 世界. <무용한국>, 7, 38.
김태원(1997). 망각과 타오르는 정념, 그리고 불교적 합창무용극. <춤>, 22(6), 159~167.
김태원(1998). 자연친화적 춤의 정서와 억제할 수 없는 표현적 욕구. <공연과 리뷰>, 17, 120~129.
김태원(2004). 김화숙. <2004년 한국의 무용가>. 댄스포럼.
김영태(1981.10.21.). 세계무대에 손색없는 수준, 感情 여과 없는 춤사위. 한국일보.
김영태(1997). 춤은 아름다운 피륙. <춤>, 22(6), 148-158.
김화숙(2010). <춤이 있어 외롭지 않았네>. 도서출판 시월. 311.
도휘정(2005.6.13.). 현대무용단 사포 20주년 기념신작 ‘그대여 돌아오라’. 전북일보.
심정민(2019). 서울무용제 40주년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무용가들. <춤>, 44(12), 126~130.
이병임(1971). 意欲 불타는 새 基地, 김복희·김화숙 무용발표회. 한국일보.
이상일(1988.9.30.). 외국 작품에 가린 창작무용|서울국제무용제 참가 국내 작품을 보고. 중앙일보.
이상일(1995.6.2.). 비극의 순화를 그린 춤의 총체극. 전남일보.
이상일(1997). 사포현대무용단의 ‘편애의 땅’. <객석>, 14(6), 200~201.
이 성(1979). 現代舞踊의 土着化. <무용한국>, 7, 39.
이태주(2022).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영모재 공연. <댄스포럼>, 278, 98~103.
정옥상(2012.5.30.). 예술과 삶의 경계는 사라지고. 전북일보
정옥상(2016). 사포, 몸으로 쓰는 시 한결 깊어지다. <춤>, 41(11), 106~113.
현대무용단사포(1995). ‘그해 오월’ 프로그램.
홍찬식(1981.12.19.). 文化界(문화계)’ 81人物(인물)5 분야별 評論家(평론가) 5人(인)이 선정 <3> 舞踊(무
용). 동아일보, 10.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졸업(1971)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1976)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1990)
경력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예술감독(1985-현재)
한국무용교육학회 명예회장(2009-현재)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이사장(2010-2013)
한국무용교육원 이사장(2010-현재)
원광대학교 명예교수(2015-현재)
문화예술멘토원로회의 멤버(2015-현재)
무용교육혁신위원회 명예위원장(2019-현재)
수훈
황조근정훈장(2015)
수상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우수상(1979), 연기상(1985), 안무상(1989)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무용 부문 ‘87 최우수예술가’(1987)
월간 객석 ‘97 올해의 무용가’(1997)
한국춤비평가협회 ‘97 춤비평가상’(1997)
이화여자대학교 선정 ‘올해의 이화인’(2001)
한국토목학회 문화부문 토목문화대상(2013)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아름다운 무용인상’(2016)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세계무용의 날 ‘특별상’(2018)
광주여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자랑스러운 광주여고인상’(2023)
대한무용협회 ‘대한민국 최고무용가상’(2023)
등재
<International Dictionary of Modern Dance>(세계현대무용사전). 미국: 세인트제임스프레스(ST. James Press), 426-429. 1998.
<The Oxford Dictionary of Dance>(옥스퍼드무용사전). 영국: 옥스퍼드대학출판부, 271. 2000.
저서
<현대무용테크닉>, <무용교육론>, <김복희·김화숙 춤 20년>, <김화숙의 춤길 40년, 춤이 있어 외롭지 않았네>, <김화숙, 무용교육의 지평>, <사포의 시간 1985-2015> 외 10여 권
논문·프로젝트
<무용즉흥법에 대한 실험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6.
<무용창작 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적용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안무의 요소에 관한 연구. <한국무용교육학회지>, 6. 1996.
브레인댄스(Brain Dance)의 교육적 의미에 관한 연구. <한국무용교육학회지>, 17(2). 2006.
뇌 기반 무용교육 기초연구. <한국무용교육학회지>, 22(2). 2011.
Slow warmup 개발의 구성 요인. <한국무용교육학회지>, 23(2). 2012.
특수무용교육 기초연구. <한국무용교육학회지>, 24(2). 2013. 외 40여 편.
주요 무용 창작품
‘法悅의 詩’(1971.11.21. 명동국립극장, 서울)
‘Cafe’(1977.12.17. 국립극장 소극장, 서울)
‘창살에 비친 세 개의 그림’(1979.10.12.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서울)
‘징깽맨이의 편지’(1981.10.15. 문예회관 대극장, 서울)
‘비나리’(1985.10.18. 문예회관 대극장, 서울)
‘흙으로 빚은 사리의 나들이’(1987.3.14. 호암아트홀, 서울)
‘마른 풀’(1988.4.25. 문예회관 대극장, 서울)
‘요석瑤石, 신라의 외출’(1988.9.29. 문예회관 대극장, 서울)
‘뒤로 돌아 이 소리를’(1989.10.14. 문예대극장, 서울)
‘그해 오월’(1995.5.31. 문예회관 대극장, 광주)
‘9月의 신부’(1995.9.14.-15. 중외공원 야외무대, 광주)
‘편애의 땅’(1997.4.30.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울)
‘손을 주세요’(1997.10.25. 중외공원 야외무대, 광주)
‘그들의 결혼’(1998.5.13.-14.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서울)
‘기억의 강’(1999.12.19. 덕진공원, 전주)
‘달이 물속을 걸을 때....’(2001.12.8.-9.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서울)
‘그대여 돌아오라’(2005.6.12.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전주)
‘사포의 겨울 숲’(2016.10.15. 대본·연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전주)
‘인생’(2019.11.13.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서울)
사포, 말을 걸다 시리즈 1-11
2012년 전주 한옥마을 카페 봄에서 시작된 ‘사포 말을 걸다’ 시리즈는 2019년까지 8년 동안
W갤러리, 광안루, 군산 파라디소, 김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가변형 작품으로 공연됨.
사포의 공간탐색 프로젝트
2020년부터 시작된 사포의 장소특정적 공연
1. ‘기억 저편_해월리 362’(2020.9.26. 대본·연출, 산속등대, 완주)
2. ‘차마 그곳이 잊힐리야’(2022.10.15. 대본·연출, 영모재, 정읍)
3. ‘간이역’(2023.10.14. 대본·연출, 서도역, 남원) 외 7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