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란국죽을 수렴한 김광숙의 춤 인생양옥경 (전북대학교 학술연구교수)프롤로그 2015년 7월 어느 날, 김광숙은 저물녘 석양빛에 불그스레 물든 갈대숲에 선 한 마리의 해오라기처럼 약간의 처연함과 고고함이 공존하는 묘한 얼굴로 필자를 맞아들였다. 그녀의 작고 가는 몸은 경추에서 출발해 그 말단인 미추에 이르기까지 한 치도 꺾일 수 없다는 듯 흠 없이 꼿꼿하였다. 그 위로 길고 곧게 뻗은 콧날과 커다란 눈은 세상 모든 감정을 품은 얼굴인 듯 그 도량(度量)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지금 필자는 천생 무녀(舞女)의 얼굴과 몸을 가진 예기무 보유자 김광숙을 처음 만났을 때 각인된 인..
김남곤 시인, 참 스승의 삶의 따라- 시와 인간, 기자와 예술의 동일성김사은(수필가, 전북원음방송PD)1. 가슴에 가시 하나 품고 살아온 세월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서사가 마냥 순풍만범(順風滿帆)일 리 만무하지만 언론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예술가로서 김남곤의 삶은 모든 면에서 정점을 찍은 성공 사례처럼 보인다. 기자로 출발해서 언론사 사장까지 역임하며 정론직필의 언론인의 표상이 되었고, 시인으로서 “그의 삶이 곧 시요, 시가 곧 삶”이라는 데 이견을 품을 사람이 없다. 그뿐 아니라 문학단체의 설립을 돕고 전라북도 예술의 역사를 정리하..
단아한 글꽃이 된 수필가 목경희 최기우(극작가)1. 목경희의 삶과 수필수필가 목경희는 1927년 봄 완주군 동상면에서 태어났다. 1941년 전주여고에 입학하면서 전주와 인연을 맺었으며, 1980년을 전후로 10년 동안 서울에서 생활한 것을 빼고 전주에서 60년 넘게 살았다. 1969년 『전북문학』 제3호에 수필을 처음 발표했다. 지천명에 이른 1976년 월간 『수필문학』에 추천받으며 등단 과정을 시작해 1992년 『한국수필문학』에서 추천을 완료하며 수필가의 입지를 다졌다. 1987년 40·50대에 쓴 글을 모아 첫 수필집 『먹을 갈면서』를 냈고, 1991년 엄마 목경희의 병간호 일기와 세상..
불모지 전북에 오페라를 꽃피운 일꾼, 조장남변자연(변자연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Una Vela!“Una Vela!(노를 저어라!)”는 세계적인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G. Verdi, 1813~1901)의 오페라‘오텔로’의 시작 부분이다.호남오페라단의 불굴의 선장 조장남 단장은 올해73세로,베르디가‘오텔로’를 작곡했을 당시와 같은 나이에 이르렀다.드라마틱하게도2024년 제53회 정기연주회는 베르디의 오페라‘오텔로’를 무대에 올리고 순항을 막 마친 호남오페라단은2025년40주년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1.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년, 음악의 길에 들어서다 조장남은 1951년 1월 5일 전남 ..
당대 전북 제일의 명고수 이성근 김정태(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60대의 이성근 선생 모습필자는 1996년 9월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으로 입단하여 소리꾼이자 창극배우로서 몇 년간 활동한 바 있다. 필자는 1998년 문치상 원장 재임 시절 당시 판소리고법반 담당 교수였던 이성근 선생에게 판소리 박봉술제 적벽가 중 군사설움 대목을 남자 단원들과 함께 학습한 인연이 있다. 특별히 학습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선생께서 의치(義齒)로 말미암아 발음의 어려움을 호소하셨고, 젊었을 때 열심히 예능을 학습하여 공부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리고 늘 성실히 연수생..
람곡 하수정의 삶과 예술세계-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와 한국적 감성의 구현 -이은혁(문학박사)람곡 하수정1. 가계와 생애 람곡 하수정은 1942년(壬午) 8월, 부친 하수열(河粹烈)과 모친 조남천(趙南川) 사이의 3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하화자(河和子),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경남 거제 출신의 서예가 성파(星坡) 하동주(河東州) 선생의 증손녀이다. 성파 선생은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와 더불어 조선의 3대 누각으로 불리는 경남 밀양의 현액을 쓴 서예가로 추사의 제자였던 부친 하지호(河志灝)로부터 추사체를 전수(傳受)했다고 알려져 있다. 람곡 선생이 ..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애를 품은 따뜻한 목각,김윤환 김미선(전북대학교 초빙교수)"기존 가구의 형태 틀에서 벗어나 오브제의 가구 개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의 오브제는 자연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나 가까이 느끼는 사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곳에 우리의 씀씀이가 놓여있다.” “I'm trying to escape from the framework of the existing furniture, and seek a concept of furniture as an objet. My objet is about nature and the objects that we encounter in our everyday lives, and that is where our uses lie.”(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
평생 무대서 살고싶었던 배우, 이덕형- 살아서도 죽었던 삶, 죽어서도 오를 무대김미진 전북도민일보 문화교육부 부장배우 이덕형은 연기를 매우 잘했다. 애초에 가진 재능이 남달랐다. 어떤 배역을 맡겨도 말 그대로 ‘이덕형화’시켰다. 믿고 보는배우, 이덕형이었다. 연출가들은 곧잘 그에게 1인 다역을 맡겼다. 무대 위에 선 이덕형은 큰 역할을 맡든 작은 역할을 맡든지간에 객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러 역할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참, 재주였다.방송인 이덕형은 끼가 넘쳤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대로연습시간을 보내지도 않았고, 어슬렁어슬렁 기웃기웃하며놀기만 했던 ..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앞장선 무용가, 김화숙- 한국 현대무용 정착과 사회적 위상 제고에 기여하다윤대성 월간「댄스포럼」편집장“이제야 무용 작품이 공연되는 ‘바로 그 순간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접는다.영원은 순간이고 순간은 영원이라는 이 단호한 명제.”- 김화숙, 2010김화숙은 “영원은 순간이고 순간은 영원”이라는 역설을 전주에서 한 무대를 꾸미면서 깨달았다고 말한다.춤은 음악의 악보, 연극의 희곡처럼 영구히 보전되는 것과는 속성이 다른 참으로 독특한 예술. 추어지는 즉시 사라지며, 그럼에도 순간을 영원처럼 불태우는 생명력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그날 김화숙..
호남우도농악 천하의 상쇠, 나금추이명훈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 이수자나금추(羅錦秋, 1938~2018, 본명 나모녀)는 1957년 남원에서 결성된남원여성농악단에서 징수로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악에입문하게 된다. 농악뿐만이 아니라 판소리와 창극, 춤에도 뛰어난 예능인이었다. 한평생 꽹과리 가락에 한을 담아 신명으로 풀어내고 부포짓에 서러움을 날리면서 살아온 인생이었다. ‘호남우도농악 천하의 상쇠’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명성을 떨치기도 하였지만, 명인의 인생살이는달 밝은 밤이면 담벼락에 기대어 눈물 바람에 소리 한 대목 흥얼거리는,한도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