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예술은 이제 급진적이라고 할 만큼 현실의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바로 생태 위기에 대해 예술가들이 발언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 와서 한국의 예술에서도 그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생태미술가를 자처하는 작가 강술생을 통해 예술과 환경 사이의 거리와 온도를 느껴보기로 하겠다.
안녕하세요. 강술생 작가님, 작년 가을에는 제주에서 열린 세계유산축전의 아트 프로젝트에서 전시감독과 작가로 만났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줌에서 인터뷰어로 인사드리게 되네요. 먼저 강술생 작가님의 작업 활동을 전반적으로 소개해주세요.
저는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생태미술가입니다. 다양한 생명체의 살아가는 모습, 자연에 의해서 스스로 되는 것, 인공적이지만 자연스러워지는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생명의 유기적인 모습을 회화, 사진, 생태미술 프로젝트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아닌 개인으로서 환경을 바라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생태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이 모두 지구를 존속시키는 동등한 생명체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최근 가장 우려되는 것은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정서의 불안함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특히 가족이란 최소의 사회적 단위가 붕괴되면서 가족이 서로를 해치는 무서운 일이 생기고 있지요. 이 모든 것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서 생기는 우리 모두의 위기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매우 공감합니다. 환경 위기에서 오는 것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우울증 등이 생겨서 배려심이 없어지고 나부터 살고 보자 하는 심리가 팽배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로서의 강술생은 예술작업의 주제를 ‘환경’에 초점을 두고 계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예술이 환경을 다루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강술생, 섬 아이와 무당벌레, 생태체험 활동사진, 제주, 2004. 2.~8. Ⓒ강술생 제공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예술작업에 반영한 것은 2004년 무당벌레 프로젝트 <섬 아이와 무당벌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에서 10년간 살다가 제주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제주 천혜의 자연을 단지 관광자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입니다.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을 탐방하면서 제주 자연의 생명력과 보존의 가치를 느꼈으며, 특히 바위를 움켜쥐고 살아가는 나무들의 생명력과 다양한 식생을 접하면서 회화 작업과 프로젝트 형식으로 담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이조사단과 함께 제주 생태를 알아가는 프로젝트는 시각예술이 단순히 장식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각예술가로서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관계 회복, 정서 회복에 가까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 위기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관계성 회복 즉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을 듣다 보니 요셉 보이스가 생각납니다. 사람의 마음을 조형하는 작업 즉 사회적 조각가와 같은 모습이 유사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생태미술이 형성되기 전에 업사이클링, 정크아트, 자연 재료, 저탄소 및 쓰레기 배출을 하지 않는 작업 등 ‘환경과 예술’을 연결 지은 기억에 남는 다른 작가(국내외)의 인상적인 작품 사례가 있는지요? 강술생 작가에게 영향을 준 작가가 있을까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의 사례는 2003년에 우연히 보게 된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의 다큐멘터리(Rivers and Tides : Working with Time, 2001)입니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성을 반영하는 작가의 태도와 표현 방식이 매우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리처드 롱의 <걷기 Walking> 작업도 신체가 유기체적 장소의 부분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몸의 움직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작품입니다. 최근에는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2002>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밀레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이삭 줍는 사람들과 자본주의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관점, 현대의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관객의 생각과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강 작가님의 예술은 ‘삶의 미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과 삶이 접목되어 있어서요. 바르다의 다큐를 저도 보았는데, 누보리얼리즘 영화의 지류인 바르다의 영화와 강술생 작가의 작업을 사람들이 동시에 본다면 큰 감동을 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작품에 대한 작업에 관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주에서 진행된 <섬 아이와 무당벌레>, <무당벌레 꽃이 되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부터 2010년 새만금 방조제에서 했던 <대지의 문> 등에 이르기까지, 꽃 심기와 농사짓기를 예술로 연결하게 한 과정에 관해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2000년도부터 제주의 생태에 관해 관심을 두고 제주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작업했습니다. 그 당시 무당벌레라는 생태미술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제가 둘째 아이가 5살, 큰아이가 9살이었던 때입니다. 화가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이기도 한 저로서는 환경이라는 것이 생명력 그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로서 우리 아이들을 염려하는 화가로서의 저의 첫 고민으로 시작한 활동은 오름과 습지를 다니며 곤충, 식물 등 생태전문가들과 함께 학습하면서 이야기를 푸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때 무당벌레를 벌레로 생각하지 않고 작고 귀여운 생명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자연의 친구로서 무당벌레 즉 생태계-유기농법에 함께 하는 곤충-에 도움을 주는 예쁜 무당벌레(살아있는 농약)들이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캐릭터로서 선택하였습니다.
2005년에는 한 장소에서 꾸준히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당벌레 꽃이 되다>라는 일련의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제주시 도남동에 있는 500평의 밭에 무당벌레 그림 그리고 거기에 심고 자라는 것을 보고 유치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샐비어 심고 9월과 10월까지 진행했는데, 사진과 드로잉 등 결과물을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의 특별전시실에서 아카이브 전시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해 무당벌레 꽃이 지고 씨앗이 떨어져 다시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메밀꽃 필 무렵>을 자연스럽게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 있었던 새만금에서의 전시 <대지의 문>은 깃발로 무당벌레를 땅에 그리고, 콩과 범부채 씨앗을 나누어지고자 했던 작업이었는데, 일회성으로 끝나 아쉬웠습니다. 그 작업은 2018년 문화예술교육으로 다시 새 출발 하였습니다. 예술=교육=창작이라는 저의 생각을 밀고 나가 무당벌레 예술 텃밭 작업으로 가족 텃밭(13가족)을 진행하였습니다.
강술생, 무당벌레 꽃이 되다, 샐비어·범부채·봉숭아 씨앗, 돌, 천, 제주 도남동 대지 500평, 2005 Ⓒ강술생 제공
강술생, 메밀꽃 필 무렵, 메밀 씨앗, 메밀 파종에서 꽃이 피는 과정까지
제주 도남동 대지 500평, 2006. 8. 16.~9. 13. Ⓒ강술생 제공
강술생, 대지의 문, 천, 대나무, 꽃잔디, 새만금 방조제 일원, 2010 Ⓒ강술생 제공
호박을 찍은 것을 보니까 귀여웠습니다. 시중에 나가기에 부족한 모양도 있었으나, 생태미술가의 눈에 새롭게 배열된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자연의 다양성을 환기시켜준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마트에 나온 것은 정형화된 것일 뿐 작물은 실제로 다양한 것이죠. 가족 텃밭에서 “못생긴 것도 괜찮다. 즉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고 꽃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못생기고 잘생겼다는 말은 상투적이고, 못생긴 것도 개성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얻었는데, 우리의 편견을 깨주는 것이 예술인 것 같습니다.
1년 후 ⇒
강술생, 씨앗-잊혀지는 숫자 헤아리기1, 디지털 프린트, 114×114cm, 2020 Ⓒ강술생 제공
강술생, 하나의 호박에서 얻은 36개의 호박, 디지털 프린트, 114×114cm, 2021 Ⓒ강술생 제공
작가님은 재료적 차원에서 숯, 씨앗, 모자반, 메주, 감귤종이 등을 사용하시는데 재료에 대한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요?
저는 자연적인 것, 변화되는 것,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로 사용합니다. 재료적 차원에서 자연이 재료로 한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씨앗을 놓고 사진을 찍을 경우, 씨앗을 다시 흙으로 돌려줍니다. 씨앗은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다시 꽃피우도록 돌려주는 거지요. 2017년 했던 탄소제로의 전시(제주도립미술관)에서 숯은 탄소의 결정체이며 우리 삶 속에서 숯은 정화작용을 하는 물질로 보고 작업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숯은 된장을 숙성시켜서 다른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낳으면 숯을 넣어서 악한 기운을 막아낸다고 하죠. 그때 전시한 작업의 제목이 <클린 하우스>인데 원래 ‘쓰레기 버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마음의 정화’를 하는 장소로 재해석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전통 생활방식에서 소나무 솔방울을 주워서 숯 대신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솔방울도 사용했습니다. 저는 늘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되 생명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감귤종이의 경우 상품이 되지 않는 귤, 즉 파치를 사용해 알맹이를 빼고 감귤종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감귤종이는 향기가 남아있거든요.
강술생, 클린 하우스, 설치, 아시바 구조물, 면 끈, 솔방울, 숯, 눈, 9×9×4.5m, 제주도립미술관, 2017 Ⓒ강술생 제공
강술생, 텅 빈 마음, 설치, 감귤껍질, 실, 종이죽, 감귤종이, 6×10×3.5m, 2018 Ⓒ강술생 제공
리사이클링에 대한 관심, 생명의 순환 등 강 작가님의 작업이 생태미술을 전부 설명해주시는 것 같아요. 환경위기 시대 예술정책과 지원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예술가와 예술정책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자연과 환경 관련 행사들이 일회성 단발성의 축제가 많은데요. 장기적으로 5년 10년, 20년, 30년 등의 장기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제 문화강국이 되어가는 한국의 위상을 본다면 예술의 힘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의 힘을 정책적으로 반영해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잘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현재까지 작업을 하시면서 작가님이 정립하신 예술관 혹은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생태미술을 통해서 변화되는 인성을 치유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찰나를 살고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하루의 찰나를, 인간은 100세의 찰나를, 나무는 300여 년의 찰나를 살고 있습니다. 지구의 긴 시간 속에 우리 모두의 찰나의 삶이 공존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미술, 조화로운 삶의 길잡이가 예술을 통해 좀 더 뚜렷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씨앗의 희망을 품고 끝까지 나아갔으면 합니다.
저는 강술생을 ‘씨앗의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생태미술의 씨앗이 되어준 작가. 씨앗에서 보는 생명력의 왕성함을 보고 작업을 한 작가이고 씨앗을 가지고 가장 많이 작업한 작가 강술생 말이죠. (웃음)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되면서 온라인예술이 되어가고 있는데, 생태예술가로서 온라인으로 작업할 생각은 없는지요? 온라인 미디어로 작업하는 것은 어떠할까요?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전시는 촉감이 없고 메마른 느낌이지요. 코로나 이후엔 과거로 다시 돌아가긴 어렵습니다. 따라서 온라인 오프라인이 공존하되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세계유산축전 아트 프로젝트 작업을 대면으로 오픈하지 못하고 비대면 영상으로만 공개되었는데, 감성까지 파동을 주기에는 역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생한 질감이 전달되지 않는 미디어 작업보다는 자연에서의 현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따른다면 보완적 측면에서 온라인작업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강술생(김미숙 협업), 우후석순2-달무리, 2500평 모래밭 위에 드로잉과 퍼포먼스, 2020~2021 Ⓒ강술생 제공
지금까지 강술생 작가님과 즐거운 인터뷰를 했는데, 독자분들에게 생태미술이 무엇인지 소개해주는 유익한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강술생 작가를 더 깊이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해온 작업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함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생태계의 온전한 회복을 추구하고 결국 인간성을 되찾는 사회를 꿈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고 그것들 각각의 건강한 관계가 성립될 때 비로소 우리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는 강술생 작가의 확고한 신념을 읽었다. 강술생이 텃밭에 뿌린 씨앗 하나가 생명력을 틔우듯, 작가의 예술 씨앗이 우리 가슴에서 싹터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향기를 내뿜기를 기대해본다.
강술생은 제주 출신의 생태미술가이다. 생명체의 살아가는 모습, 자연에 의해 저절로 되는 것,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워지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양한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망을 회화, 사진, 프로젝트 형식으로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씨앗의 희망>(갤러리비오톱, 제주, 2021), <마음의 집>(갤러리비오톱, 제주, 2020), 기획전 <바다가 보이는 기당정원>(기당미술관, 제주, 2019), <생태미술 공존 순환>(제주현대미술관, 제주,2017)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이메일
유현주는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Th. W. Adorno의 미학 연구로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세계적인 생태예술가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가 참여한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화학예술특별전 <화성에서 온 메시지>의 전시감독(한국화학연구원 주관, 2017)과 2020년 문화재청 후원으로 유네스코자연유산축전인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트 프로젝트 <불의 기억> 전시감독을 맡았다. 2021년 유니스트의 예술인문컨텐츠연구회의 공동연구원으로 ‘온라인 플랫폼 시대의 언택트 예술’에 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였다. 2021년 아르코에서 열린 융복합예술축제에 온라인 텍스트의 저자로 참여하였다. 생태미학예술연구소 대표이며 현재 한남대학교 미술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대중문화와 미술>(미진사, 졸저, 2014)과 <인공지능시대의 예술>(공저, 도서출판b, 2019), <불의 기억; 자연, 인간, 생명>(크리시드, 2020), <팬데믹 시대, 온라인플랫폼과 예술>(공저, 가가북스, 2021) 등이 있고, 독립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