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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예술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연재
  • 2022-06-03 13:04
  • 조회 186
박태건(시인, 웹진 《온전》 편집위원)
제5호 2022 문화예술정책_2022년 6월

본문 내용


2022년 《온전》의 연재코너는 편집위원들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두 번째는 시인 박태건 님의 글입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의 그림에는 밤하늘에 별이 떠 있고, 지붕 아래 가족이 있습니다. 아빠는 발이 크고 엄마는 손이 큽니다. 엄마는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통해 아이의 감성을 길러 주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학원은 초등학교 때까지 일입니다.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니까요.

 

기원전 만 오천 년 전에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굴에 사냥한 짐승을 그리고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렸겠지요. 고대인들은 소를 그리면 소의 정령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군요. 고대인들은 대상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사물과 사물의 생태에 자세히 알아야 했습니다. 예술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곧 예술이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원광대 음악학과 폐과 반대 농성  원광대학교 음악학과 제공 | 원광대 음악학과 폐과 반대 시위  전북일보 제공

 

사회가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불확실성 또한 커지면서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이라 하는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관련 강좌나 동영상 콘텐츠의 유통이 성황이지요. 그런데 대학에선 오히려 인문학이 퇴출되고 있습니다. 사학·철학은 사라지고 문학은 콘텐츠가 되었지요. 대학의 예술학과 사정은 더 심합니다. 전북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학의 예술학과들이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강도 높은 대학의 구조조정이 십여 년 넘게 이뤄지다 보니 기초학문은 고사할 위기입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볼까요? 원광대학교는 얼마 전 음악과를 폐과(2020)하기로 했습니다. 오래전 국악과와 통폐합되었던 음악과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죠. 우석대학교는 국악과를 폐지(2015)한 지 오래입니다. ‘소리의 본고장’이라 자부하던 우리 지역에서 남은 것은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가 유일합니다. 더구나 전북대의 입학정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술학과가 폐과 되면 예술가 지망생이 줄어들게 되고 청년 예술가들도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학기초가 되면 대학 누리집은 폐과를 반대하는 글로 넘쳐납니다. 폐과 반대 투쟁을 다짐하고 연대를 요청하는 글 중에선 교과과정 개편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협상안도 보입니다. ‘다 들어줄 테니 목숨만 살려 달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술학과 구성원의 반발에 대한 대학들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이런 상황은 예술인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고(故)강수연 배우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00가 없냐’

 


원광대 미술대학 폐과 반대 시위  전북중앙신문 제공

 

대학의 예술학과 퇴출의 쓰나미에 미술과의 운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석대(2000)를 시작으로 전주대(2013), 군산대(2018)에서 미술과들이 차례로 사라졌습니다. 미술과를 우리 지역에 처음 설립한 원광대도 폐과(2012)를 발표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지역의 미술협회가 반대 운동을 벌이며 반발이 커지자 결국 미술의 세부 전공을 통폐합하고 정원을 감축하면서 원광대 미술학과라는 명맥은 유지되었습니다.

 

무용학과 사정은 어떤가요? 원광대(2012), 우석대(2014), 예원대(2017) 순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치 ‘가장이 실직하면 피아노 학원부터 끊는다’는 말처럼 실용성 없고 취업이 어려운 학과를 골라서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지요. 이렇게 예술학과들이 사라지면서 청년 예술가들이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며 성장하여 지역에 영양분을 재공급하는 지역 예술교육의 선순환 구조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2014년은 도내 예술학과들이 가장 힘들었던 해 였습니다. 이때를 전후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유독 예술학과를 노렸기 때문입니다. 원광대는 전국 최초로 설립한 서예학과를 없앴고(2014) 군산대는 신입생이 입학한 지 2달 만에 세라믹콘텐츠 디자인학과를 폐과(2014)시켰습니다.

 


원광대 서예학과 폐과 반대 시위  익산열린신문 제공

 

대학 구조조정의 칼날이 예술학과에 집중된 이유는 대학구조개혁 평가가 원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교육부가 주도한 대학구조개혁(이하 대학평가)의 요지는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한 대학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인데요. 거부하면 정부 지원금을 포기해야 하니 대학으로선 거부할 수 없는 요구인 셈입니다. 교육부는 전국 298개 대학을 A∼E등급의 다섯 단계로 평가해 재정 지원 제한 조치와 정원 감축 등의 조치를 했습니다. 이 평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취업률이었지요. 취업을 잘 시켜야 존재할 수 있으니 돈이 대학의 정체성을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대학학회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이 강제성과 획일성, 졸속성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합니다.(2015) 그리고 구조개혁과정에서 ‘대학의 의사소통 구조의 악화’, ‘교육부의 통제 강화’, ‘대학교육의 질 하락’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합니다. 저는 학과 통폐합과 폐과 과정에서 학생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교수들도 영업사원처럼 할당량(?)을 채워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인문예술 계열의 폐과로 ‘확보’(?)한 입학정원은 프라임 사업 같은 이공계열의 지원책을 받기 위한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대학의 인문‧사회‧예술학과를 정리해버린 구조조정의 민낯을 보면 ‘21세기는 후마니타스(인문)의 시대’라는 말에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예술의 배후가 자본으로 넘어온 지 꽤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 분야에 경쟁주의가 도입되면서 예술도 대중문화의 엔터테인먼트에 점령되는 추세입니다.

 

   
폐과를 반대하는 학내 게시판 글  원광대 누리집 제공 | 예원대 무용학과의 폐과 반대 대자보  전북일보 제공

 

고대의 예술가는 생활인이자 주술사였고 창조자였습니다. 예술은 사람의 가슴에 그려진 무늬를 옮기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들소의 그림을 그림으로써 실제로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 예술의 주술성의 다른 말은 절실함이었습니다. 이 절실함이 예술작품으로 투사되기 위해선 일단 주어진 현실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예술학과의 폐과는 자본이라는 야만의 논리에 대한 예술적 저항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대로부터 예술은 절실함을 통해 공동체의 힘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존재 자체였기 때문이지요. 문화 산업시대가 되면서 엘리트 문화는 대중문화에게 우위를 넘겨주었습니다. 이제는 예술학과 폐과를 계기로 우리 문화예술계의 구조를 개혁할 새로운 쟁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생산체계에 최적화된 상품화된 예술로 채우면서 예술이 소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별이 빛나던 시대의 길 찾기’에서 ‘예술학과 폐교 시대의 길 찾기’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 필자 박태건

    박태건은 시인이자 문학박사다. 민족문학사연구소와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지역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저서로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익산 문화예술의 정신』, 『봄, 기차』, 『나그네는 바람의 마을로』 등이 있으며 공저로 『마을, 오래된 미래를 담다』, 『익산, 도시와 사람』, 『익산, 종교화합의 성지를 가다』, 『전북의 재발견』, 『전북문화지도』, 『전북인물사전』, 『강을 거닐다』, 『유적 따라 이야기 따라』 등이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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