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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백인의 자화상 DB

제목

소설가의 삶과 문학, 서정인
  • 2026-05-27 09:35
  • 조회 59

본문 내용


 

 

 

  


 

 

 

 

 

 

 

 

 

 

 

 

서정인 소설가의 삶과 문학

허백 선생전




​정철성(문학평론가)


 



소설가 서정인 선생의 성명 서정인이 필명이고 본명은 서정택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선생의 아호가 허백(虛白)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관습에 따르면 선생의 조상들과 그분들의 공덕을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나 선생이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므로 생략한다. 선생의 고아한 풍모를 그려 칭송함이 다음 순서일 것이나 역시 꾸중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생전의 친구였던 신광철 교수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신 교수는 선생이 일반적으로 사회의 상식이 요구하는 인습적인 제약이나 가식으로부터 나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으리만큼 파격적으로 자유롭다라고 평했다. 두 분의 사귐은 별칭을 지어 따로 부를 정도로 각별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끌 때는 엄하기가 서릿발 같았다. 봄꽃 가을열매에 등장하는 황하청 교수는 선생과 어느 정도 성향이 비슷하다. 황 교수는 찾아온 졸업반 제자에게 이렇게 변명한다. “내 쪽에서 내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거나 합리적이면 나를 용서하게.”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은 선생님 쪽에 타당성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이 너무 합리적이어서 딴 쪽에 그늘이 짙고 골이 깊어요라고 응수한다. 선택이 어렵고, 선택을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런데 선택의 후과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가 있다. 선생은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무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을 유지하면서 양보 또는 타협이 불가피할 때 둘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세상에는 좋은 뜻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고뇌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쌓는 것도 한낱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선생은 19361210일 순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당시에는 소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고, 재학 중에 군 복무를 마쳤고,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1962년 사상계사 신인상에 단편 후송이 뽑혀 소설가로 등단했다. 서울 삼선중학교와 삼선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건강을 해쳐 고향에 내려와 휴양했다. 1966년과 1968년 사이에 광주제일고등학교, 강진군에 있는 도암중학교, 순천농림전문학교에서 근무했다. 196810월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에 부임했고, 2002년 봄 정년퇴직할 때까지 줄곧 영어영문학과에서 근무했다. 그 사이에 1971년부터 이 년 동안 하버드 연경학원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1979년부터 삼 년 동안 풀브라이트 학생으로 털사대학에서 공부했다. 1996년에는 방문 연구원으로 옥스퍼드에 갔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2009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2025414일 별세했다. 자손들이 선생의 위패를 강화도 전등사에 모셨다.

 

선생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은 전주 덕진연못에서 멀지 않은 호반촌의 자택이다. 이곳의 작업실은 이제 나무 그늘 속에 적막하게 비어 있다. 세간에 교수라는 직함으로 알려져 있으나 선생은 가르치는 일보다 소설 쓰는 일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교수는 부업이고, 소설가가 본업이라는 것이 선생의 본심이었다. 퇴직금이 일정액 쌓이자 선생은 사직하고 소설 쓰는 일을 전업으로 삼으려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붕어를 읽으면 선생의 뚝심으로도 밀어붙이지 못한 저간의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의 소설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소설집 (1976)에는후송」「물결이 높던 날」「미로」「」「나주댁」「가을비 「우리 동네」「」「벌판」「남문통밤과 낮11편이 실려 있다. ‘서정인 창작집이라고 부제가 얹혀 있는 두 번째 소설집 가위(1977)에는원무」「어느 날」「금산사 가는 길」「탱자꽃」「여인숙」「겨울 나그네」「행려」「천호동」「가위9편이 실려 있다. 이 두 소설집은 절판이라 구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1996년과 2007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을 읽다가 초판을 다시 들추어 보니 새로운 표기법에 따라 철자를 수정한 사소한 차이 말고 외래어를 고집스럽게 토착어로 바꾼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세 번째 소설집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980)에는 밤 바람 밤 비」「나들이」「춘분」「병든 집」「사곡」「뒷개」「물치」「사촌들」「귀향」「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1편이 실려 있다. 세 권의 작품집은 세로쓰기로 조판이 되어 있다. 선생이 참여했던 동인지 산문시대가 가로쓰기를 했다고 주목을 받기도 했던 시절이니 격세지감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네 번째 소설집 철쭉제(1986)에는분열식」「밤 이야기」「정자 그늘」「집짓기」「골짜기」「철쭉제6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중편 철쭉제는 다섯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이 작품으로 선생은 월탄문학상을 받았다.

 

그다음 나온 작품이 달궁3부작이다. 달궁(1987), 달궁 둘(1988), 달궁 셋(1990)으로 출판되었다. 세 권을 하나로 묶은 합본 개정판 달궁: 박달막 이야기(2017)가 나중에 나왔다. 판소리의 호흡과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대화로 지면을 가득 채운 달궁은 선생의 글쓰기에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이어서 두 번째 장편 봄꽃 가을열매(1991)가 출판되었다.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 대학과 공장을 함께 들여다보며 세 인물의 행적을 추적한 소설이다. 봄꽃 가을열매를 상재할 무렵에 이르면 장편에 대한 선생의 관심이 형식 탐색의 단계를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틀을 얻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다시 단편이 나오기 시작한다. 붕어(1994)에는해바라기」「국경수비대」「기우망상광상」「환상」「붕어7편이 수록되었다. 붕어는 동서문학상 수상작이다.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1999)에는 무자년의 가을 사흘」「잠적」「치과의사의 죽음」「생일」「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5편이 실려 있는데, 중편 무자년의 가을 사흘무자년의 가을 사흘」「팔공산」「화포 대포3편을 포함한다. 선생은 중편 무자년의 가을 사흘로 김동리문학상을, 소설집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으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용병대장(2000)말뚝(2000)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이다. 두 작품을 따로 읽어도 좋고 그리 못할 이유도 없지만, 하나로 이어서 읽는 것이 더 좋다. 선생이 구상한 서정인 전집에는 용병대장다음에 말뚝을 위한 순번이 아예 없다. 두 작품을 하나의 장편소설로 취급하라는 무언의 요구가 들린다. 용병대장과 수사, 다시 말해 군대와 교회라는 두 개의 거울에 르네상스를 비추어 조합하면 그것의 입체적인 형상이 떠오른다. 로렌초 데 메디치와 같은 정치가를 중심에 두고 르네상스를 살피는 통상적인 방식에서는 보이지 않던, 전혀 다른 문예부흥기가 나타난다.

 

모구실(2004)에는 모구실」「진료소」「수련원」「섬진강」「의료원」「되고개」「휴양림」「벽소령」「몽둥이」「피난섬」「쟁몽두」「장명등」「도처에 불나방1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연작소설이라 부르는 것이 표지에 인쇄된 창작집이라는 분류보다 훨씬 더 이 소설에 어울리는 호칭일 것이다. 선생의 뜻도 연작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그냥 소설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빗점(2011)역수행주」「갓꽃」「쇠귀 고개」「목마빈 급행」「세마」「개나리」「빗점8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목마파리스의 판단」「경국지색」「출정」「화신」「목마」「불타는 성6편을 그 속에 품고 있다.

 

바간의 꿈(2014)이 선생의 마지막 소설이다. 이 소설과 여행기 미얀마 기행을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다. 작중 화자의 발길은 도중에 들른 쿠알라룸푸르에서 미얀마의 수도 양곤, 옛 수도 만달레이, 그보다 더 오래전 도읍 바간으로 이어진다. 옛 바간의 들판을 수놓고 있는 이천 몇백 개의 탑들은 불심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 중에서도 최상의 경지에 도달한 조화를 보여 준다. 그러나 바간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곳에도 왕궁의 음모와 배신이 있었고, 전쟁과 살육이 있었다. “가족과 신하들을 죽이고 왕이 된 한 사내가 피로 더럽혀진 손을 씻으려고거찰 담마얀지를 세웠다. 절은 왕이 아니라 강제 노역에 끌려 나온 노예들과 포로들이 지었다. 왕은 벽돌담에 바늘이 들어갈 틈이 있으면 거기를 쌓은자의 팔을 잘랐다. 세월과 지진을 견디고 우뚝 솟은 탑은 여전히 화려하다. 이런 탑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탑을 쌓은 공덕은 왕이 아니라 노예들에게 돌아갔다. 탑이 아니라 일손이 아름답다. 선생은 가난하고 무지하고 지저분해도 떳떳한 미얀마 사람들에게 찬사를 바친다. 선생이 여행 중에 찍은 사진 가운데 가장 평화로운 표정이 미얀마의 거리에서 차를 마시는 순간에 담겨 있다.

 

잡문을 별로 쓰지 않았던 선생이 드문드문 쓴 산문을 모아 펴낸 것이 지리산 옆에서 살기(1990)였다. 여기서 몇 편을 덜어내고 그 후 기록된 훨씬 더 많은 글을 모아 개나리 울타리(2012)가 되었다. 선생의 산문에서는 평소의 지론이 불쑥 펼쳐지기도 하여 소설의 묘사와 대화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엿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선집 또는 대표작 등의 표제를 달고 출판이 되었던 저서들에 벌판(1884), 오늘의 한국문학 33인선, 20, 서정인(1987), 가위(1987), 뒷개(1988), 해바라기(1992), 한국소설문학대계 46, 철쭉제 외(1995), 물치(1996), (2019), 무자년의 가을 사흘(2021) 등이 있다. 이 책들 가운데 마지막 두 권을 제외하고는 절판 또는 품절이다. 선집이 이런 형편이니 앞서 열거한 소설집이나 장편소설들은 도서관이나 헌책방이 아니고서는 만날 방도가 없다. 최근에 나온 무자년의 가을 사흘이 선생의 소설에 대한 갈증을 풀어 주기도 한다. 이런 선집의 취사선택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원본을 찾아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여하튼 눈 밝은 독자들이 선생의 작품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용병대장말뚝, 그리고 바간의 꿈등이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과 감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저간의 형편이다.

 

이 많은 작품을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고, 중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두 번째 소설집 가위원무가 실려 있다. 길이를 기준으로 소설을 분류하는 통설에 따르면 중편에 해당한다. 발표 시기로 보면 첫 번째 소설집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아마도 길이 때문에 첫 번째 에 실리지 못하고 두 번째의 처음을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중편은 숫자를 앞세운 여섯 마디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마디마다 임원희, 박일호, 김순이, 윤두석, 정삼화, 그리고 석민이 무대의 중앙에 등장하고, 이 여섯 명의 인물이 서로 연결된다. 임원희가 박일호를 만나고, 박일호가 김순이를 만나고, 김순이가 윤두석을 만나고, 윤두석이 정삼화를 만나고, 정삼화가 석민을 만나고, 석민이 원희를 만났는데 그녀가 처음 등장했던 임원희이다. 임원희, 김순이, 정삼화는 여성이고 박일호, 윤두석, 석민은 남성이다. 이들은 세 명씩 삼각관계를 맺고 있다. 순서를 지키며 세 명씩 끊어 내면 임원희박일호김순이, 박일호김순이윤두석, 김순이윤두석정삼화, 윤두석정삼화석민, 정삼화석민임원희, 석민임원희박일호 등 여섯 개의 조합이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이들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마치 살이 여섯 개인 수레바퀴의 한 칸을 저마다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원무(圓舞)’라는 제목의 함정에 덜커덕 빠진 덕분이다. 여섯 명이 돌아가며 발화의 주도권을 가지는 여섯 개의 이야기가 원형의 순환 구조 속에 있다는 주장은 흡사한 반복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사소한 변이를 무시한다 해도, 여섯 만남이 순서를 지켜 이대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순서를 뒤집거나, 건너뛰거나, 아예 순서를 무시하고 다른 순서로 일어날 가능성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원무는 인간사의 얽힘을 멀리서 조망하여 시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다.

 

첫 번째 조합에 나오는 원희와 일호가 성적 결합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착시의 결과이다. 그들은 기차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의 거리가 최솟값에 다다랐던 것은 기차가 급제동, 급출발을 하면서 온몸으로 부딪히고 휩쓸렸을 때이다. 어색한 흥분 때문에 두 사람 다 산소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가슴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함께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원희는 부모의 허락을 얻는 대신 친구와 동행한다는 핑계를 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원희와 일호의 관계는 다음 문장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일호와 일주일 동안이나 같이 지냈던 것이 사실이었고 거기에는 아무래도 신비스러운 생명의 힘이 작용했었다고 어렴풋이나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이면 두 남녀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일호는 고종사촌 형이 원장으로 있는 성수의원에 기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아마도 여행 직전에, 일호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일호가 원희를 데리고 와서 하룻밤을 잔 것을 셈에 넣으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생각으로 기울게 만드는 것은 사실 원희의 아버지 임 변호사의 통속적인 상상력 덕분이다. 원희의 설악산 나들이에 함께한 일행이 친구가 아니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임 변호사는 대뜸 관광호텔더러운 구식의 욕조를 떠올린다. 더군다나 청결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청춘이 구가하는 신비스러운 생명의 힘은 두 사람이 그렇게 가까워진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면 경험 부족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 같다. 그러나 반론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개정판에서는 일주일사흘로 바뀌었다. 수정의 의도를 나는 초판본의 일주일 여행이 원래 사흘 정도가 적당한 여행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판단한다. 기간을 사흘로 수정하여 복기해 보자. 육십년대 대중교통의 수준을 고려하면 두 사람은 오가는 길에 이틀을 허비했을 것이다. 설악산이 보이는 관광지에서 보낸 시간은 기껏 하루에 그친다. 그들의 자존심에 기대지 않더라도 별일 없이 두 사람이 헤어졌을 수 있다. 아무 일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원희의 고백에는 분명히 모호한 구석이 있다. 설명을 마치고 나서 원희는 사실이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처음엔 자못 불만스러웠지만 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아버지가 적당한 선에서 사태를 해석해 버리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원희가 전달 가능성을 걱정하는 바로 그 사실과 임 변호사가 적당한 선에서 해석한 사태는 동일한 전개를 가리키지 않는다. 또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설악산에 다녀온 후 일호는 찾아가서 정식으로 딱지를 맞느냐, 아니면 안 찾아가서 헛되이 속을 태우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결국 일호는 원희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

 

일호는 순이와 결합한다. 그들은 원장 몰래 영화 구경을 가고, 그것을 들켜서 원장이 알게 된다. 그들은 중국집에서 만나 입을 맞추고, 남산 소나무 아래에서 몸을 더듬고, 여관에 함께 투숙한다. 먼저 잠이 깬 순이는 첫 번 경험 때와는 달리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앞으로 올 일에 대한 외구(畏懼)를 느꼈다.” 순이가 일호를 받아들인 동기는 불분명하지만, 경험이 한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녀의 처지에서는 알아보고 나자 선택은 이미 되어버린 다음이었다. 선택의 선행 조건이 바로 선택이었다.” 이것은 물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변명이다. 순이는 자신에게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아서 지킬 것도 많은 원희와는 달리 가진 것도 지킬 것도 많지 않은 순이는 그 빈자리를 선택과 행동의 자유로 채우고 있다. 순이를 남겨 두고 탈영병 김일호는 자수 기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강원도 원통리로 돌아간다.

 

(1) 무슨 일이 있었다, (2) 아무 일도 없었다, 둘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무방하다는 말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말과 다르다. 비둘기는 돌아오고, 까마귀는 날아갔다. 그러나 비둘기와 까마귀를 선악으로 구분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어떤 의미는 해답을, 또는 해답처럼 보이는 것을, 물고 작품으로 돌아오고, 또 어떤 의미는 작품 밖으로 비약하여 작품의 세계를 확장한다. 선생의 소설이 어렵다는 말은 불편하다, 또는 답답하다는 표현의 딴말이다. 이야기의 전개에 매달려서 궁금증의 해소로 재미를 제공하는 소설과 달리 선생의 소설에는 줄거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선생의 소설이 보여 주는 미덕으로 흔히 문체와 구조와 실험정신을 꼽는다. 이러한 해설에 동의하는 것과 선생의 소설이 전통적인 재현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구성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둘 다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독서법이다.

 

순이는 보름 이상을 무단결석하고 있는 동생을 위하여 하숙으로 담임선생 윤두석을 찾아가 선처를 부탁한다. 윤두석은 시야말로 영혼의 가장 성실한 반려이고, 인생의 가장 완벽한 대화라고 믿는 얼치기 시인이다. 한때 문학소녀였던 순이는 윤두석의 권유로 시를 쓰고 여성 잡지에 그녀의 시가 실리기도 한다. 그러나 단골 미장원의 살찐 미용사의 시가 그 잡지에 벌써 세 번이나 실렸다는 말에 열정이 식어 버린다. 그녀는 시인이 되는 준열한 자세를 가져보는 것은 다섯 밤 정도로 충분했다고 진단한다. 미련에 몸이 단 것은 두석이었다. 그는 성수동 뚝섬으로 다섯 번 찾아가지만, 순이와 순이의 시를 함께 잃고 돌아온다.

 

석민의 분량이 가장 짧다. 성씨에 대한 언급 없이 그의 이름만 나온다. 그는 주로 정삼화의 전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파악되는 인물이다. 원희가 흠모하는 K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음에 비하면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성격을 추측할 수 있다. 석민은 서울에서 버스로 세 시간 떨어진 시골 출신으로 가난한 법대생이었다. 그는 고등고시를 네 번 보고 두 번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결국 최종 합격에 실패한다. 고시를 포기한 다음 입대하여 군 법무관을 노렸지만, 그 자리마저 동기 동창에게 빼앗긴다. 그가 조기 제대를 하게 된 것은 그가 당번병으로 있었던 사단장이 정삼화의 외삼촌이었기 때문이다. 삼화의 어머니는 석민을 사위로 점찍고 있다. 어찌어찌 장학금을 받아 일 년 독일에 다녀온 그는 경제기획원의 관리가 된다. 그리고 그는 황금의 줄을 붙잡기로 결심한다. 그는 경제과학 심의위원을 큰아버지로, 그리고 변호사를 아버지로 가지고 있는 한 아리따운 처녀원희와 결혼을 하기로 한다.

 

이들이 한 줄의 인연 속에 늘어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점들을 이어 원무라는 닫힌 곡선을 그린 다음의 일이다. 그물을 던져놓고 보니 망 안에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벼리를 당긴 뒤에 몇 마리가 남을지 미리 알 수 없다. 이들은 상대방 건너 동성의 존재를 모른다. 임원희는 김순이를 모르고, 박일호는 윤두석을 모른다. 이런 규칙은 정삼화-석민-임원희의 조합에서만 지켜지지 않는다. 정삼화는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인물이다. 비원의 연못에서, 올바른 표현을 따르자면 창덕궁 후원의 연못에서, 연꽃을 바라보던 정삼화는 꽃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연꽃의 꽃말과는 달리 그는 실패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지문 속에서 그녀가 꽃말을 알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석민이 역경을 딛고 성취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대신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며 출세를 궁리하는 꼬락서니를 비웃는 말로 들린다. 연꽃과 석민이 성공과 실패의 이항대립을 예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설의 본문에는 꽃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꽃말은 무엇이었을까?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전통 속에서 연꽃은 물들지 않는 깨끗함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연꽃과 꽃말은 서로 낯선 사이이다. 영취산의 설법에서 부처가 미소와 함께 들어 올린 연꽃을 두고 꽃말을 운운하는 경우는 없다. 꽃말은 근대 이후에 유럽에서 들어온 수입품이다. 정삼화가 기악 전공의 음악가이면서도 영시와 불란서 시를 원어로 줄줄 외는수준의 재원임에 비추어 보면 그녀는 서구식 꽃말에 익숙한 편일 것이다. 바로 이 순간, 필요한 순간, 그녀의 지식이 한계를 보이는 것이 그녀의 비극이다. 빅토리아조에 유행하기 시작한 영국식 꽃말에 따르면 연꽃의 꽃말은 달변이다. 한편 꽃이 핀 부분을 따로 떼어서 서먹하게 멀어진 사랑이라고, 또 잎은 취소라고 말을 붙이기도 한다. 달변과 서먹한 사랑과 취소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곧바로 가리킨다. 석민은 도무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부분 혼자 말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를 애정의 깊이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리고 그들의 약혼은, 결국 파국에 이른다. 석민은 취소하고, 철회하고, 부인한다. 그녀는 눈앞에 놓인 자신의 운명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운명은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선택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의 선택에 냉정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지혜는 비극의 주인공이 종종 발휘하는 쓸모없는 능력의 하나이다.

 

원무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선생의 초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두려움에 싸여 있다. 두려움의 원인은 무지이다.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수동적 참여만이 허용된다. 이것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들은 부당함에 분노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여 우울에 빠진다. 선생은 실의와 무지와 악의와 조소와 도로로 가득 찬 거의 악몽속에서 허우적거린 경험을 성 중위에 투사하였으나 단지 그가 조금 피곤하고 고독할 뿐인 상태로 형상화했고, 시적 변화를 적용했다고 자신을 소설가로서 처음 알린 작품을 설명했다. 그들은 대부분 무능하다.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이른바 지도층 인물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무의 끝부분에서 임 변호사와 경제 전문가인 그의 형과 또 한 사람은 죄형 법정주의와, 역금리 체제의 전망에 대해서, 그리고 멧돼지와 골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들이 말하는 죄형 법정주의는 법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것은 법에 의한 지배를 시도할 때마다 권력이 애용한 수단이었다. 역금리 체제는 군사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보다 그들의 관심을 끈 것은 멧돼지가 출현하여 골프장 잔디를 헤집어 놓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부작위에 의한 무능을 저지르고 있다.

 

인물들이 시대와 부조화를 겪으면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시대의 압도적인 위세에 눌려 있으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형국에 좌절하고 있다. 그들의 시대는 개인의 노력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에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눈에 비친 역사의 흐름이 이렇게 위압적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15장에는 주인공이 왕국의 형편을 진단하여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The time is out of joint.” 누구에게 전해 들은 것인지 기억이 분명치 않은데 선생이 이 문장을 시대 탈골이라고 옮겼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런 말이구나. 감탄해 마지않았다. 요즘 어감에 맞추어 풀어 놓으면 시대의 뼈마디가 온통 어긋났도다가 될 것이다. 달궁에도 유사한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한 예를 들면, 목수의 아들 홍형태는 세상이 나사가 몽창 빠졌다고 생각했다. 왕자에게는 운명에 덧붙여 물려받은 권력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선생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그런 의식의 증식을 허용할 여지가 없다. 그들의 현실은 냉정하고 가혹하다.

 

무능한 인물이 가득한 사회는 루쉰이 그린 20세기 초 중국과 아Q의 마을을 닮았다. 그러나 루쉰과 선생이 창조한 인물들 사이에 닮은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선생이 루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수렴진화와 같은 결과의 유사성에 기인한다. 선생은 1996년에야 영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말로만 많이 들었던 Q정전을 영역판으로 읽었노라고 기록했다. 선생의 봄꽃 가을열매라는 장편의 제목이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고 번역된 루쉰의 조화석습(朝花夕拾)과 닮은 것도 흥미롭다. 루쉰의 Q는 가난하고 밟아도 꿈틀거릴 줄 모르는 전형적인 중국인이었다.” 루쉰의 다른 인물도 체념과 자기합리화의 늪에 인중까지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한편 선생의 가위토요일과 금요일 사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도 사회 운영의 책임을 진 기제들이 아예 없거나, 고장 났거나, 반응을 회피하는 바람에 좌절과 분노를 겪지만, Q가 빠지는 수렁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두 작가가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의 요구가 서로 달라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루쉰에게 과거의 중국과 중국인의 낡은 심성은 철저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태평천국의 난으로부터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만주족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의 세상을 다시 만들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이 개혁의 기치였다. 중화민국을 세우면서 이것을 한, 만주, 몽골, , 티베트 다섯 민족의 공존을 뜻하는 오족공화(五族共和)로 봉합하였지만, 과거 청산이라는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꿈꾸었던 근대 일본이 과거를 청산의 표적으로 삼은 것도 비슷한 기조에 속한다. 서세동점 이후 동아시아 삼국이 과거를 극복하려고 시도함은 매양 한가지나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은 그 대응이 훨씬 더 어려웠다. 식민지 조선인에게 과거는 청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생존을 위한 얼마 남지 않은 유산이었다. 그리하여 단절이 아니라 극복, 계승이 아니라 선별이라는 전략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축이 신축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은 겪어 보면 안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버리지 말 것을 버렸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선생의 소설 가운데 아마 가장 유명한 에는 부구로()”가 나온다. 이것은 개정판에서 세면가방으로 바뀐 일본어다. 호야와 남포는 뒤섞여 쓰였다. 남문통에서는 서서 술을 마시는 다찌노미손님이 소리를 친다. 후송에는 CP, OP, EE-8 등의 약어가 나온다. 각각 사령부와 관측소, 그리고 야전용 전화기를 가리키는 미군의 용어다. 해방, 군정, 전쟁의 영향은 영어의 약진으로 귀착되었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생각의 전이를 가져왔다. “색씨 그루는 다홍치마쩍이라는 말을 알아듣는 나이의 평균치는 얼마나 될까? 문맥으로 대강 짐작이야 하겠지만 정확한 의미를 대라면 검색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몫진 코 아래 진상이 없다는 한탄은 또 어떤가? 사곡에 등장하는 번기의 형수가 남편에게 가외로 들어오는 부수입이 없다고 푸념하는 말인데, 시청 계장은 권한을 나누어 가져서 누가 뇌물도 바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속담은 상황이 바뀌면서 용처를 잃었다. 가부장제가 열녀문과 더불어 흔적기관이 되었고, 일반인이 관청에 들어가 민원을 처리하면서 봉투를 건넬 필요가 없는 제법 깨끗한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속담도 더불어 수입품으로 대체되었다. 정삼화는 큰 불행보다 사소한 불편이 더 견디기 어렵다면서 노새의 등을 부러뜨리는 것은 마지막 지푸라기라고 말한다. 그녀는 노새 대신 낙타나 당나귀를 넣기도 하는 서양 속담을 인용했다. 에서 대학생 김 씨는 누구나가 다 템즈 강에 불을 처지를 수야 없는 일이다라고 푸념한다. 템즈 강에 불을 지른다(set the Thames on fire)는 말은 무슨 대단한 업적을 이룬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1666년의 런던 대화재나 제이차대전 중의 공습을 떠올리면 오용 또는 남용에 이르기보다는 차라리 용도를 찾지 못한 지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자조적인 넋두리로 들리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수입품은 충분히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흉내 내기와 겉치레에 빠진 외국어 숭배를 선생은 극도로 경계했다. 선생은 근대화, 산업화, 서구화의 논리가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누차 지적했다. 달궁』 「성터에서 홍 씨네 농방이 어떻게 몰락했는가를 살피면서 근대화라는 허울 아래 무엇이든지 제 것이면 다 버렸다라고 한 개탄은 선생의 지론과 차이가 없다. 개정판에서 일일이 외래어를 지운 것도, 등산용 버너를 불통이라고 바꾸어 쓴 예처럼 기존 한국어로 표현이 가능하면 그런 용어를 애써 발굴하려는 노력도, 모두 맹목적인 서구 숭배에 대한 경계심에서 나온 것이다.

 

선생의 산문에 역사는 소리 없이 고함을 지르고 (訥喊), 우레 같은 침묵 (震黙)을 지킨다라는 문장이 있다. 루쉰 첫 작품집의 제목이 訥喊이다. 영역본은 이것을 무장을 촉구하는 외침 소리(Call to Arms)” 또는 고함(Outcry)” 등으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군대에서 기를 흔들며 외치는 소리와 관련이 있다. 음역하여 “Nahan”으로 표기한 것을 보더라도 본래의 음에 따라 한국어로 읽으면 납함이 된다. 그런데 선생은 눌함으로 읽었다. 한자의 음을 달지 않았으나, “소리 없이 () 고함을 지르고 ()”라는 풀이를 보면 눌함이 맞다. 여기에 덧붙여진 우레 같은 침묵, 진묵은 진묵대사를 연상케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불법을 펼친 진묵대사의 언행은 설화 속에 살아 있다. 돌을 깎아 세운 비석보다 사람들의 혀에 새긴 구비가 더 많은 진실을 전한다. 두 번씩이나 모순어법을 겹쳐 사용한 소리 없는 고함과 우레 같은 침묵은 보이지 않는 역사, 숨은 역사를 체험할 방편을 제시한다.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인정이 침묵으로 고함을 지른다. 후송에는 근무 지역의 조류분포도를 만드는 의무참모와 백지에 싼 소설을 책상 서랍에 감추어 읽는 간호장교가 있다. 그들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성을 쏟고 있다. 벌판에서 참봉네 손자 경철의 군대 생활은 그의 아버지인 참봉네 큰아들 김 씨가 세상을 이해하는 틀 밖에 있다. 김 씨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경철의 변모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도 좋다. 경철은 인도지나의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역사적인 사건은 주목할 겨를도 없이 조용히 문맥 속에 삽입된다. 몰락한 집안의 빚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채를 막기 위하여 농협 대출을 얻어 낸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경철은 참봉의, 조상들의, 구심력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에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동원한다. 독자는 그가 집을 떠나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벌써 반쯤 다른 사람이 되어 마을을 떠난다. 또 다른 예를 에서 찾아보자. 5년 만에 인우는 고향으로 돌아와 고리대금업을 하는 당숙을 찾는다. 당숙에게 장리로 빌린 쌀 열 섬이 75섬으로 불어났지만, 3부 이자로 쳐서 37섬만 갚을 속셈이다. 그가 출향하여 돌보지 않는 사이에 모친이 세상을 떠났고, 누이는 이사를 했다. 당숙은 인우에게 그 빚을 누이가 이미 오래전에 갚았다고 알린다. 인우는 누이가 당숙의 성화를 견디지 못하여 원금과 이자를 갚았음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아니면 누이가 집을 팔고 촌으로 이사한 경위를 설명할 수 없다. 인우가 말한다. “나는 장리 염감이 그렇게 지독한 줄은 몰랐어. 당자만 없으면 되는 줄 알았지.” 인우가 동석을 만났는데 동석은 인우의 아내를 형수가 아니라 미쓰 김이라고 부른다. 동석은 인우의 육촌 동생이다. 그가 먼저 인우의 아내에게 청혼을 했지만 그녀와 가족이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은 싫다고 동석을 거부했었다. 인우와 동석은 술자리를 함께하다가 주먹다짐을 한다. 동석에게는 묵은 원한이 있다.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인우와 그의 아내가 누이를 만난다. 누이를 만나 확인해 보니 누이는 원금 열 가마만 갚았고, 그것을 동석이 받아 갔다. 인우는 동석이 나머지 다섯 섬을 채워 넣었다는 것을 비로소 안다. 실상은 이렇다. 이사는 형편이 쪼들려서 한 것이고, 인우의 어머니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건달 동식이 순정을 발휘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거짓으로 심부름을 한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인우가 좀 더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귤을 호도처럼 돌렸다.” 인우와 동석이 하나씩 나누어 가진 귤은 손바닥에 냄새와 끈적거림을 남겼을 것이다. 그것은 인우와 동석의 사이를 이어 주는 동질감의 은유이다.

 

소시민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숨은 역사를 우리는 철쭉제에서 만날 수 있다. 하얀 차양모를 쓴 현애, 빨간 등산모를 쓴 철순, 자칭 장사꾼이라는 장 씨와 포장마차를 하는 윤 여사, 네 사람이 일행을 이루어 지리산 등반을 한다. “철없이 철학적인 철순과 현실적인 현애는 친구 사이이다. 철순과 현애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장 씨와 윤 여사의 관계는 애매하다. 인월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백무동에서 예상치 못한 야외 취침을 한다. 그들은 철쭉제가 열린다는 사실도 모르고 백무동까지 왔고, 지리산에 처음 왔다. 지리산에 처음 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그들의 종아리와 허벅지는, 자신들이 올라가는 산의 크기를 모르고 있다. 주로 철순과 현애가 대화를 이어 가는 와중에 장 씨와 윤 여사가 끼어든다. 철순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다. 그녀의 말투는 부모의 외도와 불화 때문이라기보다 타고난 천성인 것처럼 보인다. “바보만으로도 나쁜 일이 안 되지만, 악당만으로도 안 돼요. 반드시 그 악당을 믿는 바보가 있어야 해요.” 이유를 묻는 현애에게 그녀는 악당을 만드는 것은 바보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책임을 악당에게 미루는 간편한 해결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철순의 통찰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보여 준다.

 

하동바위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등산로 다음에 바로 장터목 산장으로 장면이 바뀐다. 그들은 이미 정상에 다녀왔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갔다가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와 일찍 산장에 자리를 잡았다. 날이 아직 저물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는 일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아니면 중요한 일은 무대 밖에서 일어난다는 전통을 지키려는 듯이, 등산 행로의 가운데 토막을 소설의 서술이 건너뛴다. 이튿날 새벽에 길을 나선 그들은 연하봉, 촛대봉을 지나 세석으로 들어간다. 형형색색의 천막들이 세석평전의 풍광 속에 아름답게 박혀 있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입을 딱 벌렸다. 핏빛처럼 진한 빨강과 물빛보다 더 푸른 파랑이 풀들의 푸른 빛 위에서 아침의 첫 햇살을 받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풀들 속에는 흘린 피보다 더 끈끈한 붉은 꽃들이 들불처럼 번져 있었다.” 이 장면은 네 사람이 명제가 아니라 기운으로, 해설이 아니라 호흡으로, 역사와 대면한 순간을 포착한다. 물론 소설은 그들이 도달한 인식의 수준을 설명하지 않고 무심하게 넘어간다.

 

하산길에 그들은 발을 절며 내려가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양복 바짓부리는 양말 속으로 야무지게말아 넣은 그 사내는 일행과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백무동에서 철순과 현애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세 버스를 얻어 탄다. 사내와 함께 온 사십여 명이 타고 있는 버스이다. 버스가 실덕 삼거리에서 멈추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묻는다. “어느 게 지리산이야?” 그들은 지리산에 와서 지리산을 찾고 있다. 지리산 공기를 호흡하면서 지리산을 모른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속에서 살면서 자신이 역사를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벽소령 오부자 바위는 땅과 하늘의 경계선인 산등성이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선녀와 세 아이는 하늘나라에 살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위들은 아미(阿美)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기 직전 나무꾼 인걸(仁乞)이 그들을 뒤쫓던 순간을 형상화한 것일까? 마고할미가 그 모양을 하계의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장 씨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치더니 두레박타령을 흥얼거린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여러 결말 가운데 행복한 결말을 선택했다. 또 장 씨의 두레박타령은 달궁의 판소리를 본뜬 입말투를 미리 선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장 씨는 가사를 발목을 삔 사내김 씨에게서 받았다. 김 씨는 의사라고 했다. 그들은 김 씨가 의사인지 아닌지, 발목을 삔 것인지 삔 척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네 사람은 다시 정보의 부재 속에 던져진다. 마천을 지나자 물이 산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산에서 물이 내려온다고 믿었던 신념이 무너진다. 철순이 지리산의 북면에서 내려온 물들이 북동으로 흐르다가 진주 남강 쪽으로 갈 것이라고 알려 주면서 그들의 작은 혼란은 평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들이 산행길에 나누었던 대화에서 불쑥불쑥 솟아났던 더 큰 혼란은 너무 커서 혼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면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달궁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는다면 이 글은 넘겨받을 때부터 분수에 넘쳤던 임무의 반의반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달궁은 인실의 일생을 하나의 굵은 선으로 그리고 그 위에 다수의 곁가지를 그려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 또 그들과 얽힌 사람들을 배열한 길고 긴 두루마리 그림이다. 인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살면서 사랑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그녀를 괴롭힌 것은 물건이었다. “사람이 가진 물건은, 그것이 돈이든 건강이든 젊음이든, 그 사람을 좋아하게 할 수도 있고 싫어하게 할 수도 있어서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황 영감의 사람을 좋아했다.”

 

 


 

 

황 영감은 인실의 신실한 스승이었고, 낙척 교수 김 선생은 형태를 비롯한 여섯 모임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요약하자면 인실이 만난 세상에는 사람과 돈의 두 부류밖에 없다. 사람과 돈은 서로 배타적인데 항상 함께 다닌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그나마 소란이 덜할 터인데 둘 사이의 순서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서 늘 불화를 일으킨다. “이 세상이 바뀌어도 정신없이 바뀌었다.” 소설에 여러 번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꺼꿀로바뀌었다. 이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 그것이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인실의 몫이었다.

 

달궁을 평가하는 용어 가운데 실험적이라는 상투어가 있다. 인실은 선생이 창조한 독특한 인물이다. 그러나 인실과 같은 유형이 뚝 떨어진 것처럼 새롭다고 하면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을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가 쓴 동명 소설의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따돌림을 못 견디고 의심과 절망에 빠져 열차에 몸을 던졌다. 인실 박달막의 경우에는,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확실치 않지만, “빨간색의 팔 톤 짐차였다. 애매하게 유사하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니얼 디포의 소설 몰 플랜더스는 어떤가? 원래의 긴 제목은 줄거리의 요약을 포함한다. “유명한 몰 플랜더스의 행운과 불운. 새문안 감옥에서 태어났고, 파란만장한 육십 년의 생애 동안,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 12년 창부, 다섯 번 결혼(그중 한 번은 자신의 동복 오빠와), 12년 도둑, 8년 버지니아 식민지 추방 중죄인, 마침내 부자가 되어, 정직하게 살았고, 참회자로 타계했다. 그녀의 비망록으로부터 작성함.” 인실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나 다름없이 떠돌았다. 그녀는 네 번 결혼했다. 첫 남편은 양부모의 아들이었고, 유전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으나 함께 성장한 오빠였다. 인실이 중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누가 어지간히 상궤를 벗어나도 전혀 까탈을 부리지 않았다. 결코 새롭지 아니한, 여러 천 년에 걸쳐 변함이 없는, 사회적 억압이 몰과 안나와 인실의 삶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제의 측면에서는 선생의 소설에 실험적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판소리를 닮은 구어체가 형식의 측면에서 실험적이라고 거론되기도 한다. 판소리의 율격을 닮은 부분은 등장가」「형님」「피아노」「수작」「악질」「서문」「니나노」「장례식」「도덕」「사해동포」「한밤의 음악편지」「새댁」「부수」「새살 헌살등의 이야기에 삽입되어 있다. 이것이 소설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나머지를 채우고 있는 것은 구어체를 그대로 빌려온 듯한 사설이다. 소리에 아니리가 끼어든 것이 아니라, 아니리가 소리를 끼워 준 형국이다. 말이 말의 꼬리를 물고 달려 나온다.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져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내닫듯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런데 처음에 낯선 이런 서술이 이윽고 익숙해지면 소설을 읽는 별난 재미를 준다.

 

수필 산과 바다의 첫머리에 이런 인용문이 있다.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경험한 대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여기에 선생이 한 마디 덧붙인다. “이 괴테의 말은 현실과 허구의 관계를 잘 요약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것이 흠이다.” 수수께끼로 말하자면 선생의 말씀도 수수께끼이다. 인용문의 출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년에 비서로 일했던 요한 페터 에커만이 그날그날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괴테와의 대화로 추정된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므로 괴테의 말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 아니지만 괴테가 전하고자 하는 뜻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1830314일 저녁, 대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시에서 가식을 떤 적이 없다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 그것을 표출하도록 나를 추동하지 않은 것은 결코 말하거나 쓰지 않았어.” 이어서 그는 사랑과 프랑스의 문화와 적개심과 애국심에 대하여 발언을 계속했다. 선생이 현실과 허구의 관계라고 풀이한 것을 경험과 소설의 관계로 바꿀 수 있다. “수수께끼 같은 것이 흠이라고 부연한 것은 작품화의 방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음을 아쉬워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 예술은 날것이 아니라 가공이다. 선생은 사투리를 사투리 그대로 쓴다고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고 소설화해야 소설이 된다고 지적했다.

 

인물들은 상대가 들으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대화에 계속 참여하고 있는 인물들 사이에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미리 알 수 있는 맥락에 대한 앎이 있을 터이지만, 옆에서 듣는 사람의 귀에는 대화의 흐름이 제멋대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화로 가득한 선생의 소설이 독자의 독해를 방해하는 것처럼 읽힌다. 대화는 그래도 상대가 있다. 혼잣말도 입 밖으로 나오면 누구더러 들으라고 하는 말인데 누가 들으라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선생은, 그것이 자신의 경험이든지 자신의 경험을 투사한 작중인물의 경험이든지,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기록한다.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원체험과 유사한 체험의 반복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소설을 읽는 행위가 간접 체험이 아니라 직접 체험으로 다가와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작중인물들의 입장에 들어가면, 그들은 독자가 읽을 때마다 다시 새 삶을 산다. 독자의 편에 서면, 소설을 읽는 것이 또 다른 체험이 된다. 남의 체험과 기억의 기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체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경험은 행동의 경험이고, 언행으로 흔적을 남긴다. 언행은 말과 행동으로 분리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행동은 줄거리에 들어가고, 말은 대화와 생각으로 나온다. 달궁에도 줄거리와 대화가 있다. 그러나 생각이 차지하는 몫이 훨씬 더 크다. 달궁에 나오는 생각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건너뛴다. 그래서 선생이 사용하는 대명사가 자주 방향을 잃고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달궁은 인실 한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모든 사람들의 생각으로 그려 낸 시대의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의 기록과 다른, 또는 기억의 재생과 다른 이런 서사를 실험적이라고 부른다면 충분히 용납할 만하다.

 

선생의 실험에는 전례가 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런 전례를 찾는 일은 보물찾기처럼 흥미롭다. 형태가 모임에서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를 소개한다. 형태의 지적 능력은 이런 시를 소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답하라!” 또는 응답하라!”라고 번역되는 이 시의 원래 제목은 “Respondez!”이다. 휘트먼은 풀잎을 평생 고쳐 썼는데 핵심 판본으로 보통 여섯 개를 꼽는다. 이 시는 1856년 판에 처음 실렸고, 1881년 판 이후에는 분할되어 사라졌다. 휘트먼은 이 시를 후기의 수정본에서 완전히 빼 버렸다. 덕분에 잘 읽히지 않는 시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도다라는 구절로 보아 1871-1872년 또는 1876년 판이 번역의 원본이다. 소제목 대답해스승들,에 들어 있다. 대답해에서 휘트먼이 왜 미국 민주주의의 유예 또는 타락에 대하여 분노했는가, 그리고 형태가 어떻게 시를 입수하게 되었는가를 짤막하게 설명한 다음 번역이 나오기 시작한다. 스승들,로 마디가 달라져도 계속 연결된다. 스승들,에 쉼표가 있는 것은 스승들,”이 제목이면서 동시에 시의 일부임을 나타낸다. “제한된 삶의 세월이 무한한 죽음의 세월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하라. (그러면 죽음이 무엇을 하리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로 끝날 때까지 온통 역설과 반어로 채워진 68행에 달하는 긴 시가 전부 실려 있다. 번역을 소설에 그대로 싣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우기는 것이 가능한가? 그 전례를 에즈라 파운드가 보여 주었다. 파운드의 칸토스1편은 안드레아스 디부스가 번역한 오디세이아11권의 일부를 다시 번역한 것이었다. 그것은 호메로스의 희랍어 원본이 아니라 라틴어 번역의 영어 번역이었다. 이를 두고 찬반과 호오가 나뉘어 지금까지 합의에 도달할 기미조차 엿보이지 않지만, 파운드라서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 휘트먼은 독립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민주주의의 행보에 분노했다. 그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분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나중에 이 분노를 슬그머니 감추어 버린 것이다. 파운드는 휘트먼을 싫어했지만 그를 인정하고 거래를 트기로 했다. 아이다호 출신의 촌놈은 제국을 향하여 발돋움하는 미국의 배금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는 제이차대전 중에 적국 이탈리아의 방송에 나와 미국과 미국 정부를 입으로 전달하기 곤란할 만큼 험한 말로 매도했다. 반역죄로 처벌받는 대신 그는 정신병원에 갇혔다. 12년 후 풀려난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파시스트 경례로 화답했다.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금이 갔다. 이십 세기 초 모더니즘의 선구자였고, 시인들의 시인이었고, 누구보다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이 뛰어났던 파운드가 파시스트였던 것은 서구의 지성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휘트먼과 파운드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은 한국어로 소설을 쓰고 영어로 시와 비평을 가르친 선생의 이력에서 나왔다. 선생이 읽은 책들은 헤아리기 어려우니 포기하고, 선생의 작품에 언급된 책이라도 다 읽고 싶다. 그것은 과한 욕심일까? 감추어진 것을 모른 척하고 드러나 있는 것만 모아도 학위 논문의 서지 목록을 만들고 남는다. 그렇다면 선생의 작품에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에 한 번쯤 가 보고 싶다는 욕심 정도는 부려도 좋을까? 피렌체에 가면 마르게리타 거리에 있는 단테의 집에서 프라토 문까지 갔다가 루첼라이 정원의 벽을 따라 걷고 싶다. 이곳은 말뚝에서 산드로 보티첼리와 그의 일당들이 수사를 구출하겠다는 일념으로 입방정을 떨던 곳이다. 베네치아에 가면 물버스를 타고 산 미켈레 섬에 가서 올가 러지와 에즈라 파운드의 묘지를 찾고 싶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에서 남자가 찾아 헤맨 곳이다. 선생 자신도 그곳에 다녀왔다. 나선 김에 라팔로, 피사, 피렌체를 거쳐 베네치아로 가는 일정을 잡아도 좋겠다. 해외가 멀면 국내로 시선을 돌려 보자. 전라선 열차를 타고 좌도길을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지리산이 보인다. 지리산은 워낙 골이 깊고 품이 커서 이야기가 많다. 그래도 만복대에서 성삼재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를 바라보면 달궁과 인실과 인실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떠오른다. 달궁에는 달궁이 없다. 달궁의 흔적도 없다. 사라진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달궁은 그래서 갈 수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지명이다. 지리산이 멀면, 가는 길에 관촌이 있다. 선생은 어느 해 송천에서 기차를 타고 관촌으로 갔다. 접는 자전거를 펴서 타고 방수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방수리는 이름이 예쁘다. 방현리 쪽으로 지류를 따라 올라가면 신전리, 월은리가 나온다. 계속 가다 보면 사자산 신흥사도 나온다. 천오백 년을 버틴 절은 대웅전만 남아서 석가 부처를 모신 대웅전 안에 금강역사와 지장보살과 흩어지고 남은 나한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철사에 매단 비천상 둘이 공중을 날아간다. 길을 따라가다가 고개를 넘어 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내려오면 다시 강가로 나온다. 선생은 이런 환상적인 자전거 달리기 길은 전주에 없다고 감탄했다. 관촌도 멀면, 호반촌으로 가 보자. 도립국악원 건너 북쪽에 있는 호반촌은 격자 모양의 골목들이 비슷하여 한 번 더 돌게 만든다. 여기 선생의 자택이 있다. 대문을 열어 주러 나오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서















┃연보
서정인 徐廷仁(본명 정택 廷垞) 1936.12.20.~2025.4.14.

1936 (1220) 전남 순천읍 장천리에서 출생

1955 순천고등학교 졸업

1955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입학

1958 입대

1961 육군 중위로 제대

1962 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 서울 삼선중학교 근무

1962 (12) 단편 후송사상계사 신인상으로 등단

1963 삼선고등학교 근무

1964 (8) 대학원 졸업

1965 고향에서 휴양

1966 광주제일고등학교 부임

1967 강진군 도암중학교로 전근

1967 순천농림고등전문학교 부임

1968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부임

1971 하버드 연경학원 연구원(2)

1976 출간, 한국문학사 제정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77 작품집 가위출간

1979 풀브라이트 학생으로 미국 털사 대학에서 공부(3)

1980 작품집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출간

1983 월탄문학상 수상

1986 작품집 철쭉제출간, 한국일보사 제정 한국문학창작상 수상

1987 장편 달궁출간

1988 장편 달궁 둘출간

1990 장편 달궁 셋,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출간

1991 장편 봄꽃 가을열매출간

1994 소설집 붕어출간

1995 동서문학상 수상

1996 영국 옥스퍼드 방문 연구원,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여행

1998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으로 김동리문학상 수상

1999 소설집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출간, 대산문학상 수상

2000 장편 용병대장, 중편 말뚝출간

2002 전북대학교 정년 퇴임, 이산문학상 수상

2004 창작집 모구실출간

2009 예술원 회원 선정

2011 작품집 빗점출간

2012 산문집 개나리 울타리출간

2014 장편 바간의 꿈출간

2025 (414) 88세의 나이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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