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문인화·전각에 깃든 선비정신의 서예가 김종범최혜순 서예가, 철학박사내가 우관 김종범 선생을 처음으로 뵈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5~46년 전쯤의 일이다. 그때 나는 서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선생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마침 운 좋게도 어느 서예 작품 전시회에서 선생을 뵙게 되었다.선생의 첫인상은 눈빛이 매우 날카롭고 빛이 나서 어떤 사람은 호안(虎眼)이라고 하였다. 그 때문인지 선생께 말 붙이기를 무척 어려워하던 사람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후에 바로 선생께 입문하여 ..
탄생 130주년 전북 문단의 스승가람 이병기의 삶과 문학글.박태건 (시인, 문학박사)가람 이병기의 삶과 문학 탄생 130주년을 맞은 2021년에 가람 이병기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개최됨을 뜻깊게 생각하며,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진행한 『가람 이병기 학술대회 자료집』(2011~2018)과 최승범 선생이 지은 『스승 가람 이병기』(범우사, 2001),이병기 선생의 『가람문선』(신아문화사, 1966)을 바탕으로 이 글이 작성되었음을 밝힌다.격변기에 태어난 민족의 스승가람 이병기(1891~1968)는 전북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에서 아버지 이채와 어머니 윤병 사이에 태어났다. 가..
전북 음악 발전에 헌신한 선구자, 이정태글. 기명숙 (시인)1. 아름다운 음악인 바리톤 이정태이정태는 1931년 음력 5월 5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1가 34-1에서 명문가이자 부자로 소문난, 아버지 이우봉과 어머니 박태선 사이에서 4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전주초등학교를 졸업, 전주북중과 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다시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여 성악(바리톤)을 전공하였다.1956년에 고창여고를 시작으로 전주고와 전북사대부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북기계공고를 마지막으로 퇴임할 때까지 40여 년간 많은 제자를 양성..
먹 색의 깊은 맛을 담는 수묵화가, 방의걸글. 김미선(전북대학교 강의전담교수)목정 방의걸(方義傑, 1938~ ) 화백은 ‘목정(木丁)’이란 아호를 직접 지어 1980년경부터 사용했다. 처음 화백의 아호는 송전(松田)이었고, 이는 스승 청전(靑田)의 뒤를 잇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외에도 이문현인(以文軒人)이나 고향인 고창에 대한 애정으로 모양성인(牟陽城人), 방장산인(方丈山人)도 생각했지만, 그 무렵 새롭게 목전(木田)이란 아호를 염두에 두고 전주에 있는 한 전각제작소를 찾았다.목전(木田)은 처음 송전과 마찬가지로 청전의 ‘田’자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 만..
전라삼현육각의 명인전태준글. 김용호(정읍시립국악단 단장, 한국학 박사(Ph.D))1. 시작점에 서서삼현육각은 일반적으로 피리 두 개와 대금, 해금, 장구, 북이 각각 하나씩 편성되어 연주되는 풍류 음악을 말한다. 이러한 삼현육각은 지역의 특색을 안고 다양한 음악이 계승되고 있는데, 조선 말까지 거상악(과거 연회에서 연주하던 곡을 뜻한다. 상을 받기 전에 아뢰던 음악으로 이때 부르던 노래는 대개 가곡, 가사, 시조가 있다), 무용 반주음악, 행진 음악은 물론 지방 관아의 연향 및 고관의 행차, 사가의 연향, 향교의 제향 등에 사용되었다. (이보형,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4)』 (..
판소리와 전통기악, 우리 시대 대가 김일구글. 손태도(前판소리학회장)1.머리말 국악 입문 60주년행사 때의 김일구 (2008)김일구(金一球)는1940년전남화순군이서면야사리야사마을에서판소리꾼이었던김동문(金東文)의3남1녀중장남으로태어났다.부친은당시이름난소리꾼은아니었지만,그래도그지역일대에서는명창으로알려진사람이었다.호남지역광대집안사람들은‘일왈창(一曰唱)’이라하여다음처럼판소리명창이되는것을가장영예로운길로여겼다.과연1930년대까지도호남지방의세습무가단골집안의남자(사니)들중에서명창들이배출되었다.그들중불행히도성대가나빠..
다시 태어나도 연극인, 류영규 글. 류가연(연극인, 창작극회 단원) 연극을 만나다 6·25 전쟁 이후 온 동네 청년들은 농한기가 되면 어디서 배워 왔는지는 몰라도 반공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동네 마을회관 마당에 통나무와 합판을 쌓아 무대를 만들고 동네 청년들이 직접 연출과 출연을 해가며 3~4일간 공연을 하였다. 당시 다섯 살이던 그는 이쁘장한 외모 덕에 동네 유일의 아역 배우로 캐스팅되어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대사라고는 “꽃 사세요~”, “육혈포!” 정도였지만 형님, 삼촌들과의 연극 연습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도 종일 거울을 보며 연기 연습을 했..
마지막기생민살풀이춤의 명인 장금도글.신명숙 (대진대학교교수)춤은흥으로추어야한다고하면서마지막까지마실가자는장금도(1928-2019)의음성이아직도귓가에들린다.춤이좋아서춘다는그녀는‘마지막기생’이라는타이틀로지면에알려졌다.어릴적권번교육을통해익힌기생이배워야할전통가무악과예의범절규범이평생그녀의삶에깊은영향을미쳤다.나는1999년도부터장금도와춤으로인연을맺었지만처음에는늘말씀이없으셔서기생이라는사실을알지도못했다.그냥옛날에춤을췄던분이고,연로해서집에계시다는단순한소개를의심하지않았다.군산을오고가고몇차례다니면서시골할머니치고는품행과언행이남달라비로..
전북 현대회화사의산증인, 이복수이용엽(향토사학자)생애사이복수(利福洙,1922~2004)화백은완주군고산면(당시는고산군남봉리)에서태어났다.그는대대로이곳에서살아왔으나어려서일찍모친이작고하면서전주에살고계시는조부(이순재,李順載,1869~1943)댁에서자랐다.조부는한학자로전·예·해·행·초서에능하여,전주향교의‘명륜당중수기’를썼고전주초등학교(전주보통학교)강당앞에있는김도흥의선덕비등을썼다.1992년8월2일〈강암서예관〉에서열린에10폭병풍을출품전시한바있어도내에서널리알려진서예가였다.이복수화백은이런조부님밑에서먹을갈아주고글씨공부를하였다.전주제일보통학교(현전주..
악필(握筆)의대가석전황욱(石田黃旭)오광석(서예가)1.생애(生涯)석전황욱(石田黃旭)은1898년11월10일전북고창군성내면조동리구슬마을에서평해황씨(平海黃氏)인황효익(黃孝翼)의5남3녀중차남으로출생하였다.석전의집안은훌륭한선비들이많이배출되었는데특히석전의7대조인이재황윤석(頤齋黃胤錫,1729~1791)은실학사상의거장으로활동하였으며,『이재유고(頤齋遺稿)』,『이재속고(頤齋續稿)』,『이재난고(頤齋亂稿)』등수많은저서를남겼다.석전은대대로이어온선비집안분위기에서생활하며6세에서학에입문하여붓을잡기시작하였다.당시집안의경제적여건도1천여석을할정도로좋았으며,뛰어난재능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