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便安)과안식(安息)을주는담백하고정갈한현림정승섭의수묵산수화김명숙(미술사,문학박사)현림(玄林)정승섭(鄭承燮)은수묵산수화를그리고자신만의독특한관점에서수묵설경산수를궁구하며그이치를좇는한국의대표적인수묵산수화가라할수있다.그는청년·중년시기에참여했던국전에서인물화를통해화업(畵業)의세계를인정받았지만인물화에서설경산수화로전향은작가가몸담았던예향의도시전북이라는시대적·지역적·환경적상황에서시작되었다.자연환경,실경산수화를어떤관점에서이해하고또어떤부류의산수그림으로접근할것인가를동양화론와금강경,육조단경,공자,노자,장자의예술철학입장에서분석하..
전북 문단의 문예부흥을 일으킨 시인, 백양촌 글.송희(시인) 내가 백양촌 선생을 처음 만난 곳은 세일러 칼라와 옥잠화 꽃잎이 눈부시던 성심여고 기다란 복도에서였다. 낯빛이 곱고 단아한 모습으로 까만 출석부를 끼고 가만가만 걸어오시던 것이 첫 기억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선생의 긴 여정을 탐미하여 정리하는 일은 감회가 새롭다. 각인된 이미지를 벗어나 선생의 깊은 내면을 알아가는 과정이 될 듯하다. Ⅰ. 백양촌 선생의 일대기 백양촌 선생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97번지, 부친 신영준과 모친 김정혜 사이에서 1916년 8월 본명 신근辛..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능란한 기교, 거문고 연주가 강동일 글. 한정순(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 거문고 교수) 1. 나의 스승 강동일 거문고의 명인 강동일 선생은 1928년 11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하리 603번지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성품은 곧고 맑으며, 외모는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였으나 표정은 항상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용모가 단정하여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흰 셔츠에 슈트 차림을 즐겨 입는 선생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격의(隔意)없는 예술가였다. 무업을 하던 아버지 강남풍과 어머니 김월선 사이에서 출생한 선생은 3세 때 자손이 없는..
시네마 키드의 생애, 영화인 탁광(卓光)영화 ‘아리랑’으로 영화인 탁광(卓光)을 만나다 글. 탁영환(미디어 아티스트·다큐멘터리 프로듀서) 프롤로그 정갈하게 잘 정리된 한옥마을의 한옥 한 채, 안쪽 대청마루에서 서걱서걱 벼루에 먹을 가는 소리가 들린다. 백발이 희끗한 홍안(紅顔)의 어르신 옆에서 조그만 꼬마 하나가 먹을 갈고 있다. 묵향(墨香)이 가득한 이곳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이 좀처럼 예사롭지 않다. 일본에서 출간된 영화 잡지인 『키네마 준보』, 영어로 씌여진 각종 영화 서적, 한국영화총감, 셀 수 없이 다양한 영화 관련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서가 한쪽..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글. 강명선(무용평론가)2019.11월 13일 수요일, 홍대 와우산 근처에 자리 잡은 육완순 선생의 작업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분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쌓여 있는 그분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오랜 시간 변함없이 입고 있는 검정 긴 원피스, 어깨에 살포시 걸친 숄, 소녀처럼 자그마한 체구, 절제되어 있지만 기품 있는 말투와 단아한 자태, 인터뷰 내내 무용 인생을 말하며 행복해하는 소녀 같은 미소를 바라보며 특별한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순진함과 순수함이 겹쳐 보이는 모습을 여실히 느..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예술!합창(合唱)지휘자, 김성지 글.변자연(피아니스트·교육자) 김성지 (1934~)1934년 4월 1일 출생익산 남성고등학교 졸업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졸업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전주교육대학교 음악과 교수 역임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장 역임전주교육대학교 대학원장 역임광주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겸임교수 역임 전주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역임전주예수병원 합창단 상임지휘자 역임전북교원합창단 상임지휘자 역임현, 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전주장로합창단 상임지휘자 ‘합창(CHOIR)’은 천상의 소리이자 소통..
유별나게 전주를 사랑한 남전 허산옥 글. 이종근(다큐멘터리 작가) 1.전주와 서화 이규보는 1199년 전주목(全州牧) 사록(司錄) 겸 장서기(掌書記)로 부임했으며, 그후 변산 벌목감독관으로 부안을 오가면서 ‘변산 노상’ 등 많은 글을 남겼다. 1199년부터 2년 동안 전주막부 등 전북 곳곳을 방문한 가운데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란 산문을 지었다. 1199년 11월 지석(支石), 즉 고인돌을 보고 쓴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우리 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 기록이다. '지석'은 고인돌의 한자 표기다. 이규보는 이렇게 말했다. ‘변산은 나라 재목의 보고이다. 소를 ..
목가적 화풍의 화가, 김용봉 글. 김한창(화가·소설가·문학평론가) 1. 생애사 김용봉 화백의 호는 하정(夏汀)이다. 1912년 전주 출생으로 1996년 작고했다. 전주고보와 대구사범대학 졸업하고 전주성심여고, 전주공고, 전주여고, 전주농고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김용봉 화백은 1954년 6월 동경제국 미술학교 출신 이경훈을 중심으로 조직된 신상회(新象會)의 멤버로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멤버로는 이경훈, 권영술, 김현철, 김용구, 문윤모, 소병호, 이복수, 이병하, 천칠봉, 한소희,박두수와 나중에 가담하는 전병하, 배형식, 추광신, 김영창, 김해 ..
전라북도 평단을 견인한 비평가, 김교선 글. 최명표(문학평론가) Ⅰ.박복한 세대,다복한 제자김교선(金敎善, 1912~2006)은 함남 함흥 출신의 비평가이다.그는1932년 함흥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하여1938년 호세이대학 문과를 졸업하였다.그는 학교를 마치고 나서 '구문사'라는 출판사에 다니던 중 귀향하여 집안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동향의 규수 최정희(崔正姬)와 혼례를 올렸다.그녀는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나온 재원(才媛)으로,졸업 후 낙향하여 가사를 돌보다가28세의 그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마침 김교선이 사립중동학교에 교원으로 취직하자,둘은 서..
자연과 인간의 연대를 꿈꾼 화가, 황소연 글.서철원(문학박사,소설가) 60년대 지나 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은 저마다 몸과 마음에서 자연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고단하고 힘겨웠습니다. 몸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실현시켜 준 것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자연을 딛고 숨 쉬는 날마다 자유로 표상되는 예술 작업은 고통 받는 현실을 극복하는 단초가 되었고, 정신의 재활을 열어준 기회가 되었습니다. 80년대 멍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라보고, 암울한 사회를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