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척 장신의 영국 신사, 조각가 배형식 - 신고전주의 조각세계로 불모지 예향을 개척하다 - 글.최병길(철학박사, 원광대학교 조형예술디자인대학 교수) I. 근대 거장 조각가 윤효중을 만나다 1926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난 야린 배형식은 훤칠한 키에 베레모를 쓰고, 희고도 긴 머플러를 코트 위로 흘러내린 멋쟁이 용모의 예술가였다. 그는 늘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다정한 애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했던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전주북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당시 국내 최초로 전주에 설립된 동광미술학원에 들어가 작품 활동을 하던 서양화가 박병..
한국적 미감과 순박한 자연미의 화가, 권영술 글.김선태(예원예술대학교 미술조형학과 교수) 해방 전후 전북 서양화단 한국 근대 서양화 유입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동경 유학이라는 경로를 거쳐 서양화가 유입되었는데, 전북에서는 1930년대 초엽에 비로소 양화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전북 양화 선구자는 금릉(金陵) 김영창(金氷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일본 鈴木一千久馬 회화연구소에서 수학한 후 1931년 제10회부터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줄곧 입선할 만큼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며 해방 이후 전주에 머물면서 동광미술연구소에서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해..
[오하근 추모 작품론] 작품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바친 치열한 삶 글.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 1오하근의 작품 해석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 예를 들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가 즐겨 낭송하는 김영랑의 시(詩) 중에 「오매 단풍 들겄네」라는 짧은 시가 있다.“오-매 단풍 들것네” / 장광에 골 불은 감잎 날아오아 /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매 단풍들겄네” //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 바람이 잦아서 걱정이리 /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겄네‘- 「오매 단풍 들것네」 전문그렇잖아도 짧은 시에 “오-매 단풍 들겄..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수화 혁명가’, 벽경 송계일 글.김미진(전북도민일보 기자) “작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 자신이 그린 그림 속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연구하고 발표하는 것이 작가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나 주제에 걸맞은 표현 방법을 발표했을 때에, 이 사회에 새로운 감각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새로운 것을 추구함으로서 미술사가 정립이 되고, 사회가 변한다. 작가는 참여의식이 있어야 한다.” (벽경 송계일과 대화 중에서, 2018년)오랫동안 닦은 기량과 산수화를 바탕으로, 전통적 방식에 ..
치유와 다스림의 시학-미산 송하선의 문학과 인간 - 글.전정구(문학평론가,전북대학교 명예교수) 1미산(未山) 송하선(宋河璇) 시인은 1938년 전북 김제군 백산면 상정리 128번지에서 출생했다. 요교(蓼橋)마을로도 불리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아늑한 그곳은 달빛이 ‘유난히 푸르스름’했다. 밤이 깊어 가면 박꽃이 달빛과 어우러지면서 “희다 못해 더욱 푸르스름”(「박꽃」)하게 고향마을의 고적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달빛과 더불어 묘한 앙상블을 이루던 담장의 박꽃이 피어 있는 그 마을에서 송하선은 6세부터 조부 송기면(宋基冕)으로부터 『천자문(千字文)』과 『사자소..
전북 서양음악 상아탑의 시작, 지휘자 유영수 글.변자연(피아니스트,교육자) Profile 유영수(1936~ ) - 전북 완주 출생 - 전주사범학교 졸업 - 이탈리아 브릿치알디 음악학교 졸업 - 나폴리 산 피에트로 아 마이엘라 콘세르바토리 지휘과 수학 -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지휘과 수학 - 란치아노 관현악과 오페라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유럽과일본, 미국 등지의 음악축제 참가 연수 1975년 전주시립교향악단을 창단,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심포니 50여 곡과 오페라 8편, 서곡, 협주곡, 레퀴엠, 미사,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 200여 곡을 지휘하였다. 1988~1989년, ..
나는 새, 자유를 갈망한 화가, 하상용 글.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매일 술에 젖었던 애주가, 깡마른 체구에 거친 턱수염, 날카로운 눈매, 취기를 이용해 거침없이 내 쏘는 ‘입바른 소리’, 한마디로 까칠한 이미지가 故 하상용 선생의 캐릭터로 보인다. 생전에 반골(?) 기질이 강해서 시류에 영합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작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을 끝없이 견지했다. 그 결이 고운 순수한 열정과 까칠함 속에 감추어진 따뜻한 온기가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의 순수함과 고운 결, 그리고 열정이 더..
통찰을 통한 시와 미의 세계 희구, 시인 이운룡 글. 이재숙(시인 ‧ 열린시창작교실 지도교수) ▶ 구름 위의 용이 되기까지'초아(草芽)'는 풀의 씨앗이나 줄기에서 새로 나오는 어린 싹을 말한다. '운룡(雲龍)'은 한자로 해석하면 ‘구름’ 위의 ‘용’을 뜻한다. 이운룡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시인의 꿈을 이루기까지 험난한 길을 초월적인 힘으로 극복했다. 이운룡 시인의 아호는 중산(中山)이다. '중(中)'이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본래의 뜻은 ‘가운데‘이다. 그런데 주역에서 중(中)은 ‘주변과 더불어 그 속에서 중심이 되자’라는 ‘공동체의 중(中)’이다. 그러므로 중(..
황야의 등불, 화가 엄택수 글.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까까머리 중학생, 익산 남성중학교에 다니면서 동네서점에서 수시로 책을 빌려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던 문학소년. 작은 체구였지만 또래보다 성숙한 사유를 즐겼다. 명문고 남성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부 활동을 시작했고, 명태를 아주 잘 그렸다. 명태를 잘 그려서 생긴 건지, 깡마른 체구 때문인지 그의 별명이 ‘명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보기 드물게 유화를 그려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조숙한 열정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 작품들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깨진 접시 위에 성경책을 올려놓은 정물..
오직 소리뿐, 외길 인생이라오!명창 조소녀 글. 김회경 두 달여 동안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해사했다. 검정색 벨벳 원피스를 말끔히 차려입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저렇듯 단정하게 앉아있는 사람. 78세의 고령에도 그는 여전히 ‘인물 치레’ 좋은, 우리의 영원한 소녀, 조소녀 명창이다. 2014년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에서 일곱 살 어린 제자의 손을 잡고 무대에 섰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오래전부터 후학들을 키워내는데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와서일까, 그를 보며 마치 무성한 잎과 열매를 가진 뿌리 깊은 나무 같다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