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 현대음악 싹 틔운 선구자 성악가,천길량글. 한성천(전북도민일보) 전북 현대음악 대중화 선구자 천길량(千吉良)이 전북지역에 현대음악의 씨앗을 뿌린 것은 6.25전쟁의 아픔을 노래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950년 10월 24일 이리여중 강당에서 가 열렸다. 이 음악제에서 그는 박인규 · 김병우·김순곤 등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 , , 성시곡 ‘메시야’ 중 등을 독창과 중창으로 불렀다. 이듬해인 1951년 6월 30일엔 테너 천길량의 첫 독창회가 군산에서 열렸다. 국민가곡 국내 최초 노래한 성악가 테너 천길량의 첫 독주회에선..
‘한(恨)’의 문학, 평론가 천이두 글. 김승종(전주대 한국어문학과) 유년기의 가난과 청년기의 고난 평론가이자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의 교수였으며, 문학과 판소리 연구자이기도 했던 천이두(千二斗)는 1929년 음력 9월 24일,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리짝이나 키 등을 만들어 파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고,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가계를 도왔다. 부친은 좋아하던 술을 단번에 끊어가면서까지 콜레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가족들을 위하여 헌신하였고 스스로에게나 자녀에게 일체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았다. 평생 지속된 그의 부지런한 생활 습관은 어려서부..
온고이지신의 줏대 시인, 고하 최승범 글. 양병호 (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시인이자 수필가인 고하(古河) 최승범(崔勝範, 1931- )은 전북의 정신적 어른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해오고 있다.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북대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함과 동시에 다양하고 왕성한 문학 활동을 통해 전북문학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고하는 1958년 『현대문학』에 시 「설경」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이후 고하는 시조, 수필, 문학연구 등을 통하여 약 55여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그는 전북대학교 국문과에 재직하며, 전북대 인문대학장, 한국문인협..
영원한 한지화(韓紙畵) 작가, 문복철(文福喆) 글. 홍현철(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교사) 한지작가이자 교육자인 문복철은 1941년 3월 전북 대야에서 출생해 만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6세에 고국의 고향 땅으로 귀국했다. 1947년 전북 군산에서 중앙초등학교에 진학했고, 1953년 군산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야구부에서 활동했다. 우수한 선수였던 그는 결국 1956년 서울 경기공고에 스카우트되어 상경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힘든 운동선수 생활과 타향살이에 힘겨워했고, 결국 건강이 나빠져 2학년 때 군산고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전쟁 직..
전라도 완제(完制)시조의 완성자, 지봉 임산본 글. 임 환(전북도민일보 전무) 지봉 임산본 명인은 전북이 낳은 국내 시조계의 선구자이자 최고의 명창이다. 명인은 정가 중에서도 한 곡에 최고 30분까지 소요된다는 12가사를 완창한 국내 유일의 명창으로 기록되고 있다. 임산본 명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지평을 열어간 사람이다. 명인의 경지는 인간이 상상하는 최고봉 그 이상이란 평가를 받는다. 산업화 시대의 진전과 함께 우리의 옛것이 사라지던 시절, 명인의 등장은 시조창의 대중화로 직결됐다. 명인은 특히 1985년에 시조연구소를 개설하였..
춤만을 위해 걸어온 명인, 최 선 글. 김미선(호남살풀이춤보존회이수자) 아버지 최한필과 어머니 김옥주 사이에서 태어나다. 평생 춤만을 위해 살아온 호남춤 명인 최선의 본명은 최정철이다. 1935년 11월 7일 전라북도 임실에서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25전쟁 때 그의 집은 여관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최한필은 연말이 되면 임실군 기관장들을 모아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망년회를 크게 열었다. 또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면 기녀들과 폭포에서 가무를 즐겼다. 어머니 김옥주는 키가 크고 음식을 잘하셨다. 또한 항상 음식을 넉넉하게 하여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
가을 못의 청아함을 닮은 추담 홍정택 글. 양옥경 추담(秋潭)! 가을 못 가을 날 보는 물은 그 어느 계절보다 맑다 갇힌 물도 그러하다 소나기가 잦은 여름이 지나 이제, 맞춤하게 가두인 물이 표면 위 잔물만 일으키며 맑아질 대로 맑아지는 가을 못 청아함 그 자체이다. 가을 못 속 그 어느 계절보다 풍성하다 혹은 바알갛고 혹은 노오랗게 총 천연 가을 물이 든 온갖 나뭇잎들이 못 속 가득 잠겨 그윽한 색의 향연을 빚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추담 홍정택 집 소리 못은 가을 못을 닮았다. ..
멋 부리지 않아 멋이 나는 역설의 소리미학, 최승희 글. 양옥경 여는 말 최승희 명창의 소리에 혹자는 싱겁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무가 성글어서 바람이 많이 지나는 숲 같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미감을 가진 소리 호사꾼들도 그녀의 소리가 단아하면서도 호소력 있으며, 켜가 두텁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켜는 그녀가 소리에 대해 기울인 공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실 단아함은 절제된 소리가 이루는 미학이고, 호소력은 서사를 노래하는 판소리의 구절구절에 대한 소리꾼의 해석이 듣는 이에게도 오롯이 전달되는 만..
조형의 무한한 확장과 연금술사, 유휴열 글. 김선태(예원예술대학교 교수) 화가의 여정 유휴열은 1949년 전북 정읍군 소성면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셋째로 위로 형이 두 명 아래로는 여동생이 다섯 명으로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이때부터 산골 마을에서 자라며 철 따라 찾아오는 산야의 고운 색감을 자연스레 익혔다. 초등학교 3학년 까지는 고향에서 다니다가 초등 4학년 때 부모를 따라 전주로 이사를 와서 풍남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누가 가르쳐 준 것도, 배운 적도 없었지만 그는 그림을 잘 그렸다. 학창 시절 때부터 그림으로 여러 차례 ..
영원한 글쓰기 노동자, 극작가 박동화 글.최기우 (극작가·전주대학교 겸임교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동화(1911-1978)는 전북 현대 연극의 개척자로 불린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극예술연구회·실험무대·조선연극협회·중앙무대 등에서 활동했으며, 일제에 저항했던 이력으로 1942년 옥고를 치렀다. 1959년 국립극장 희곡공모에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가 당선돼 본격적인 극작가의 길을 걸었으며, 1961년 전주에서 극단 창작극회를 창단한 이후 20여 년 동안 40여 편의 작품을 창작·연출했다. 목포호남평론·군산민보·전북대신문사 등에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