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연극의 주춧돌, 연극인 문치상 글. 최김병주(극작가) 문치상(1942.12.24 - )은 연극인, 기자, 문화예술경영인으로서 전북 현대 연극을 종합적으로 성장ㆍ발전시키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문치상은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전주북중, 익산 남성고, 전북대를 나와 전북일보 등 언론계에서 30년을 몸담았다. 1967년 전북일보를 시작으로 편집부국장, 광고국장, 논설위원, 서해방송 해설위원, 전라매일 주필 등을 맡았고, 창작극회 대표, 전북연극협회 회장, 전북예총 부회장, 전주예총 회장 등 문화계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연극 등 20여 편 연출, ..
사진의 진실함에 정을 준 오십 년 세월, 흑백사진가 김학수 글. 이세영 1827년 조세프 니엡스는 그의 집 창문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석판 위에 고정시켰다. 자연의 빛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인류의 오랜 소망이 이뤄진 그 이후 사진은 기억을 저장하는 새로운 수단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소멸되는 시점에서 불려오는 특유의 향수는 사진을 기억의 고정 또는 기억의 재생을 넘어선 것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반세기 동안 뷰파인더를 통해 세월의 흔적을 담아온 김학수 작가의 사진은 ‘결정적 순간’이라 할 만한 인상적인 광경들이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진 그의 ..
한국춤의 창조적 지평을 넓힌 금파, 김조균글. 김무철((사)금파춤보존회 금파무용단 예술총감독) Ⅰ. 서 언 처음 ‘전주 백인의 자화상' 금파 김조균 선생님 편을 의뢰 받았을 때 혈연관계인 필자가 연구자로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으로 사양도 했지만 전주문화재단의 강력한 권유에 흔들렸다. 과연 냉정함을 잃지 않고, 객관적 자료들을 통해 아버지 인생을 감히 잘 풀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글을 풀어나가는 내내 계속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 시작 한다면 학자적 양심과 예술가적인 자존심이 작동할 터이고,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수락..
맡겨진 역(役)을 다한 명인, 김유앵 글. 양옥경 김유앵이란 인물을 조명하는 일은 퍽이나 고달팠다. 분명 명인의 이름으로 한 시대를 거쳐갔음은 분명한데, 이를 받침하여 열거할 사실 기록들이 풍부하기 까지는 못해도 적합하다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와 판소리 여성 명창 등에 관한 기사들을 죄 모아도, 늘지 않는 포트폴리오의 두께에 절망의 한숨을 꽤 여러 번 내쉬었다. 전말은 이랬다. 예술가들 중에는 다른 직군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인들의 정서적인 면에서 매우 입체적인 감흥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들이 유독 많다는 증명 안 된 ..
아날로그 시대의 하이브리드 선두자금헌(金軒) 신쾌동글.양옥경 '교류와 융합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본래 하이브리드(Hybrid)는 산업적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었고, 인문학이나 예술에서 이 용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낯선 용어였다. 그러나 요즘은 ‘쟝르론’이 무색해진 예술 사회이다. '너는 어디에 속하느냐?'라는 질문은 어리석음 또는 구태에 머물러 있음을 자백하는 일이 되는 현시대란 말이다.요즘의 음악 그리고 한국음악에서도 ‘국악’이냐 ‘양악’이냐는 구분은 여전히 유효한 틀로 쓰이고는 있으나, 클래식 대 비클래식, 정악과 민속악, 순수예술과 ..
가을 하늘을 꿈꾸는 소년, 윤이현글. 박예분 윤이현의 웃는 모습은 그의 동시만큼이나 천진스럽고 해맑다. 소년 같은 그를 만나면 저절로 마음이 환해져서 웃음이 나온다. 그의 성품은 부드럽고 감성적이면서 때론 고결한 학처럼 강직하다. 또한 그의 목소리엔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원로라는 경계를 스스로 허물어서, 후배들이 가슴을 활짝 펴고 다가갈 수 있는 맑은 가을 하늘 같은 사람이다. ‘글은 곧 사람’이라는 말처럼 그는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언행일치’하며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동시를 사랑하는 그는 평생 모든 사물을 자식처럼 보듬..
동양의 피카소, 화가 하반영 글. 최정학 하반영 화백은 전북 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원로 작가다. 95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붓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으면서 한쪽 눈을 볼 수 없게 되었고 2012년 늦가을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그런 ‘사소한 불편’ 따위로 캔버스와 마주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조금 불편해서 그렇지 그림 그리는 작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단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그는 가벼운 산책과 식사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모두 캔버스 앞에서 보내고 있다. 그..
기운생동(氣韻生動)한 붓질, 풍류를 즐기는 신사 권병렬 글. 구혜경 청곡 권병렬은 1924년 익산 망상면에서 태어났다. 망상면 옆에 있는 여산은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향이고, 김대건 신부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람 이병기 선생님은 청곡의 대선배로, 젊은 시절부터 함께 지내 온 가까운 사이다. 그래서 ‘청곡’이라는 호를 30세 이전에 지어줄 만큼 막역한 관계다. 가람 선생님과의 추억을 되짚어 보면, 막걸리 좋아하시는 선생님이랑 오일장(五日場)에서 마셨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에 대한 소질이 남다르게 나타났다고..
자아를 자연으로 승화시키는 화가, 박남재 글. 구혜경 올 여름 유난히 뜨거운 날 금암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집을 찾아 젊은 화가 몇몇이 모였다. 담장 너머로 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는 파란 대문 앞에 멈춰서 문패에 ‘박남재’라는 이름이 한문으로 소박하게 새겨진 것을 확인한 다음, 숨을 고르고 흘린 땀을 닦으며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나서야 초인종을 누르는 우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북 화단의 어른이기도 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였기에 어려운 마음은 더욱 컸던 모양이다.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주신 분은 반바지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계신 박남재 선..
사실주의 로맨티스트, 자연과 삶을 사랑한 화가 박민평 글.구혜경 2000년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에서 만난 박민평 화가는 마른 몸에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한 눈에 봐도 화가라는 인상을 주는 모습이었다. 당시 전시장에 걸려 있던 자화상처럼 과묵하고 깐깐해 보이는 얼굴에서 무서움마저 들었지만 의외로 환한 웃음을 지을 때는 천진난만함과 호탕함이 동시 나타나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은 그대로 동문거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동문거리의 막걸리집에서는 1980년대 전주의 예술 담론을 논하던 지인들과 탁주 한잔을 기울이고 기분 ..